헛간올빼미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입니다.
<자기 결정> p.29 페터 비에리, 문항심 옮김, 은행나무
오래도록 되풀이해 그려온 장면이 있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 속 과자로 만든 집이다. 이유도 모르는 채 노릇한 과자 벽돌과 두툼한 초콜릿 기와지붕을 그리다가 천천히 깨달았다.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나의 욕구가 어린 시절 매료되었던 그 환희에서 시작되었음을. 나의 관심은 점차 과자로 만든 집에서 소녀 그레텔로 옮겨갔다. 겁이 많으면서도 끝내 방법을 찾아내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던 아이. 나는 나 자신을 어느 정도 그레텔에게 포개놓았던 것 같다.
페터 비에리는 저서 <자기 결정>에서 자기 삶에 참여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없던 이야기를 만드는 일뿐 아니라, 내 삶이라는 이야기를 스스로 편집하는 일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경험한 일들에 의미를 새롭게 배치할 수 있는 한, 지나간 과거조차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에리는 이를 ‘자아상을 점검하고 다듬는 일’이라고 했다. 자아상이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재창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삶이라는 이야기를 편집하는 일에 무척이나 서툴렀다. 오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정하는 쪽이 단단한 버팀목이 되리라 믿었다. 뻣뻣해진 자아상을 제대로 다듬지 못한 채 그 효력이 다했을 때, 나는 그것과 함께 뚝 부러졌다. 다른 자아상-이야기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동안 그레텔은 쇠약해졌지만 사라지지 않고 버텼다. 영원한 아이이면서도, 동시에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나의 창작 자아.
누군가는 그저 유년기의 동화적 환상에 과도하게 집착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이라는 이야기에 조금 더 근사한 의미를 담아내고 싶다. 그레텔을 내 삶에서 소중한 단서로 다듬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쓰고 그리고 만드는 창작의 시간이 되면 나는 여전히 그레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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