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

블루 코뉴어 앵무

by 그레텔 그림




그럼에도 재능 없는 사람들도 그림을 그려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림으로써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러스킨에게는 그림이야말로 건성으로 보고 넘기지 않도록, 제대로 관찰하게 해 주는 방법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무언가를 그림으로 그려내려면 우리는 대상을 그저 아름답다고 말하고 쉽게 끝내 버릴 수 없다. 부분 부분을 자세하게 살펴야만 하는 것이다.


<나를 채우는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기획, 인생학교 지음, 케이채 옮김, 오렌지디, 2023





동네 호숫가 단골 과일 가게에서 딸기와 블루베리를 사 왔다. 포장을 열어 흐르는 물에 살살 씻고 접시에 담는 동안 내 마음은 조금씩 화사해졌다. 과일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베리류는 유독 사랑스럽다. 딸기는 향기만으로도 가라앉은 공기를 싱그럽게 바꾼다. 꼭지를 뗀 딸기를 소담하게 담고 그 사이사이를 블루베리로 메우면 접시 위에는 작은 축제가 펼쳐진다. 그 앞에서 마음껏 안구 정화에 빠져보기로 했다.



베리류는 눈 건강에 좋다는데 정말 그렇다. 안토시아닌 성분 때문만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는 행위 덕분이기도 하다. 딸기의 촉촉한 표면에 박힌 깨알들(이게 놀랍게도 씨가 아니라 열매란다)이나, 다섯 개의 꽃잎을 음각한 듯한 블루베리의 배꼽을 들여다볼 때면 자연의 디자인에 경외감을 느낀다. 선명한 빨강과 검푸른 빛, 매끈한 표면 위에 맺힌 반사광까지도. 요리조리 뜯어본 후에는 향을 한껏 음미한다. 냉큼 입에 넣어버리기에 너무 아깝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 존 러스킨의 말처럼, 그림 그리기는 대상을 가장 세심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니까. 눈과 손으로 오래 쓰다듬으며 충분히 감탄하는 최선의 방식이니까.



내가 사 온 딸기의 이름은 ‘금실’이었다. 산지 이름인 줄 알았는데 품종명이었다. 단단한 과육과 강한 단맛을 만들기 위해 교배된 종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딸기들은 설향, 금실, 죽향, 매향 같은 고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단단한 매향은 수출용이라고 한다. 매향이가 홍콩과 동남아로 떠나는 동안, 블루베리는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이 나라까지 와 주었다. 여기서도 달콤한데, 그 땅에서 막 수확한 열매의 맛은 어떨까.



눈부시게 푸른 하늘 아래 초록이 끝없이 펼쳐진 어느 블루베리 농장을 상상해 본다. 남미의 농부들이 정성껏 키운 커피를 정작 본인들은 맛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저 순진한 장면을 떠올리기로 한다. 고된 노동 사이의 휴식 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블루베리를 마음껏 입에 털어 넣는,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밝은 눈을 가진 사람들의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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