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랑 이야기의 힘

백조 인간

by 그레텔 그림





아직 공기는 겨울처럼 시리지만, 봄의 절기라는 우수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꺼억꺼억 힘찬 금속성 소리에 올려다보니 고니, 그러니까 백조 여덟 마리가 대열을 지어 나선으로 비행을 하고 있었다. 매년 겨울 동네 호수에 찾아오는 그들이 떠나는 중이었다. 멀어져 가는 새들을 바라보다가 안데르센의 <백조 왕자>를 떠올렸다. 이 이야기가 지닌 온도는 겨울과 봄 사이, 딱 우수라 절기와 닮아 있었다.



안데르센의 이야기에는 영롱하고 서늘한 푸른빛이 서려 있다. 비슷한 민담 버전에 비하면, 그는 여주인공을 한층 가혹한 처지로 밀어 넣곤 했다. 저주를 받아 백조가 된 오빠들은 열한 명으로 늘어났고, 여동생이 짜야했던 옷의 재료는 야생화가 아닌 쐐기풀이었다. 연민과 혐오를 동시에 품은 서사는 마치 영민하지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 아픈 아이처럼 애처롭게 반짝인다. 그의 이야기에 매혹되면서도 좋아한다고 선뜻 말하기 망설여지는 이유다.



<백조 왕자>의 서늘함은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결말로 남는다. 평생 한쪽 팔 대신 백조 날개를 달고 살아야 하는 막내 오빠. 안데르센은 여동생이 그를 유난히 사랑했음을 공들여 묘사한 후, 정작 성대한 축제 밖으로 그를 내팽개쳤다. 혹시 작가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아니었을까. 다행히 나는 그 상처 입은 백조 인간을 홀로 버려두지 않기로 작정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찾았다.



캐런 조이 파울러가 쓴 단편 <미완의 사람들>*이다. 여성 화자는 평생 자기 안에 묻어둘 비밀을 잠든 아기 곁에서 자장가처럼 속삭인다. 황량한 겨울 바닷가에서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모라는 검은 망토로 몸을 감싼 한 남자가 바닷가 절벽 끝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뒤로 천천히 이끌다가 그의 한쪽 팔이 백조의 날개임을 알아차린다. 모라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가 자신을 떠난 후에도, 그의 충격적인 사연에 대해 알게 되고 뜻밖의 만남들을 겪게 되고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결말에 휘둘리지 않고 그 자체를 완성하는 모라의 사랑에서 깊은 위안을 얻었다. 그것은 작가가 백조 인간들, 자신이 '백조 인간'임을 아는 독자들을 끌어 안아주려고 지은 특약이 아니었을까. 저마다 주체하기 어려운 날개 하나씩을 달고 살아가는 미완의 존재들을 알아보고 돌아 보려는 마음.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게 함정일 뿐. 끊임없이 좋은 사랑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에 수록, 조이스 캐럴 오츠 외 40인, 케이트 번하이머 엮음, 서창렬 옮김, 현대문학,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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