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지빠귀
설날의 하늘은 창백하게 파랬고 햇빛은 바스러질 듯 희었다. 읽던 책을 챙겨 카페로 향했다. 전날부터 전을 부치고 아침 일찍 시댁 제사를 치른 터라, 기름내에 절은 심신은 집 밖의 쾌적함에 끌렸다. 휴일의 카페는 비교적 한산했다. 겨울 햇살을 놓치기 싫어 창가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자 경직된 어깨가 풀렸다. 음악은 잔잔했고, 책은 집에서보다 술술 읽혔다. 문장들이 몸으로 스며들었다.
좋다. 나오길 잘했네.
그때였다. 한 줄기 소리가 배경 음악을 가늘게 갈랐다. 새소리였다. 까치나 직박구리의 반복적인 지저귐이 아니라, 유려한 곡조를 가진 명금의 노래. 지빠귀였다. 이상하다. 창밖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살폈지만 당연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노래는 한결 더 선명해졌다. 앞 테이블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테이블 위에 남겨진 휴대폰. 소리는 거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음료를 받아 돌아온 후에도 새소리는 이어졌다. 여자는 혼자 앉아 지빠귀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낯선 이의 휴대폰 소리는 대개 반갑지 않지만, 새의 노래는 달랐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가는 실처럼, 다른 소리와 부딪히지 않으며 또렷하게 흘렀다. 그것은 순식간에 나를 지난 초여름으로 데려갔다.
유월이었다. 뾰족한 감정을 달래려고 아침마다 걷고 있었다. 짙어진 초록이 산책길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새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지저귐이 아니라 정교한 노래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후렴이 있었다.
촙초오옵 또로리 딩요.
독특한 구절 덕분에 나는 그 가수가 한 개체임을 확신했다. 즉흥곡은 절정을 향해 오르다가 툭 떨어졌고, 다시 촙초오옵 또로리 딩요. 그는 매일 아침 같은 후렴으로 노래했고, 나는 그 사랑스러운 구절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부르면서 조금씩 둥글어졌다.
어느 날,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아득히 우듬지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검색해 본 끝에 그가 되지빠귀임을 알아냈다.
어느새 카페는 북적였고, 지빠귀의 노래는 멈춰 있었다. 나는 책을 덮고 일어나 걸으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내 또래로 보였다. 피로해서였을까 고독해서였을까. 어떤 사정이 있길래 명절에 혼자 카페에 앉아 새소리를 듣고 있었을까. 어느 쪽이든 음악이나 책에도 기대기 어려울 때 새의 노래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이곳이 집 앞이 아니라 낯선 여행지였다면,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 용기를 냈을까. 내가 되지빠귀의 노래로부터 받았던 위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
#되지빠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