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날개의 기억

바다쇠오리

by 그레텔 그림





유튜버 새덕후의 영상을 즐겨 본다. 그의 최근 영상에는 바다쇠오리들이 등장했다. 겨울 항구 연안에서 먹이를 찾으며 떠다니고 있었다. 새들은 어부들이 오징어를 잡으려고 쳐 놓은 그물에 걸려들었다. 어부들은 그물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 새들을 한 마리씩 떼내어야 했다. 생업을 지속하기 위해 추가된 노동을 감수해야 했다. 오징어 그물에 새가 잡히는 일. '혼획'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오래 반복되어 온 풍경이라고 했다.



그 새들은 겨울을 살아내기 위해서 8000 킬로미터를 날아왔다고 했다. 살겠다는 의지로 목숨 걸고 감행한 여행 끝에 도착한 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몸이 그물에 엉키고 조여들어 질식했다. 숨이 붙어 산 채로 포획된 경우에는 날개를 잘렸다. 나는 날개가 잘린 채 어떻게든 살고 싶어 버둥거리는 새를 보고 말았다. 핏빛으로 물든 잔상은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처럼 며칠째 내 안 어딘가에 걸려 있다.



뭘 쓰고 그리면 좋을까. 나는 왜 쓰고 그리고 싶을까. 이 비참한 장면에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일상의 사소한 좋음을 꾸준히 발견해서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고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날개 잃은 바다쇠오리를 못 본 척하고, 다른 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향하는 ‘좋음’과는 너무 먼 그림이 아닌가. 이 비극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좋음을 찾을 수 있을까. 무엇을 좋아해야 할까.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말에 깃든 희미한 슬픔을 떠올린다. 좋아함 후에 다가올 사라짐과 그것이 남길 상처를 예감하는 슬픔일 것이다. 그렇다면 좋아함은 이별을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포함해야 한다. 그것은 감정일 뿐 아니라, 좋음을 지키겠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연습과 단련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나는 앞으로 새들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잃어버린 날개의 고통을 또렷이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상처투성이 장면들의 끝에 보았던, 기어이 살아남아 바다로 돌아가는 새의 날개를 그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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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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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