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여행

재두루미

by 그레텔 그림




철원은 드넓은 평야 지대였다. 작은 버스는 겨울철 농지 사이를 달리다가 두루미들을 발견하면 속도를 늦추었다. 논바닥에는 수확 뒤에 일부러 남긴 볍씨들이 있었고, 그것의 주인인 새들은 어디에서나 식사 중이었다. 두루미들은 가족 단위로 똘똘 뭉쳐 다녔다. 둘이면 신혼부부, 넷이면 온전한 가족, 셋이면 긴 여행 중 새끼 하나를 잃은 경우라고 했다. 매일 보는 버스일 텐데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새끼를 감싸는 아비가 있었고, 말 안 듣고 혼자 논을 배회하는 새끼를 멀찍이 지켜보는 부모도 있었다. 큰 무리가 논둑에 앉아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없어서 새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다는 이곳에서는, 커다란 두루미들이 조그만 참새들처럼 조로록 줄지어 앉아 있었다.



나는 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탐조가는 아니다. 단지 새를 보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열정적인 탐조가들이 희귀한 종을 찾아 세계의 오지를 누비는 모험담이라도 읽게 되면, 부러움보다 거리감이 느껴졌다. 물론 헛간올빼미나 황제펭귄이나 푸른발 부비를 직접 보게 된다면 무척 좋겠지만, 그런 세계란 나와 거리가 먼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지난가을, 도요새를 보고 싶다는 충동으로 두 시간을 달려 바닷가로 갔다. 나의 첫 탐조 여행 도전은 실패였다.



그리고 두 번째 충동이 찾아왔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우리나라에 머무는 두루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철원의 민간인 통제 구역에 들어간다고 했다. DMZ라니. 유럽의 외딴 시골이나 남극이나 갈라파고스까지는 못 가도, 이 정도라면 감당 가능한 ‘모험’이 아닌가. 반려인에게 동행을 부탁하니 듣기만 해도 춥다며 투덜대면서도 따라나섰다. 한국 남성에게 철원이란 그런 감성인가 보다. 그와 나 모두에게 제대로 제철 여행이 될 것 같았다.



탐조대의 넓은 유리창 너머로 물 위 작은 섬이 보였다. 거기 새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의 방해 없이 새들만이 만드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한겨울 철원에 오는 거의 모든 종류의 새들이 모여 있는 듯 했다. 두루미들은 경계 없이 몸을 붙여 모여 먹이를 나누었고, 그 사이사이에 쇠기러기, 청둥오리와 큰고니 들이 쉬고 있었다. 줄을 지어 물결처럼 출렁이는 새들. 그들의 작은 천국은 내 핸드폰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 장면을 나 자신의 메모리에 저장해야 했다. 일상이라는 세계에서 아주 멀리 나온 기분이 들었다. 새를 보러 떠나는 여행이란, 이토록 다른 영역의 세계를 내 비좁은 삶의 반경으로 조금씩 초대하는 일 그 자체인지 모르겠다.






#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