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음악, 종달새 그리고 아이

종달새

by 그레텔 그림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아래로 쏟아지다가 벽을 타고 다시 꺾어 치솟는 눈송이들의 움직임은 작은 생명체들의 군무 같았다. 따뜻한 찻잔을 손에 쥐고 그 너울거림에 넋을 놓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본 윌리엄스 Vaughan Williams의 <날아오르는 종달새 The lark ascending>였다. 봄이 되면 곡예 같은 수직 비행을 한다는 종달새를 그려낸 곡이라 했는데, 솟아오르는 겨울 눈송이들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쾌감이 가슴을 조여왔다.




그리움인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를 향한 그리움이랄까. 이 작곡가의 다른 곡들을 들을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혹시 이 사람, 곡을 쓸 때마다 항상 어떤 장소를 그리워했던 건 아닐까? 궁금해져서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려는데 아주 오래된 한 장면이 내 안에서 불쑥 떠올랐다.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발견하자마자 나를 온통 압도해 버리는 느낌. 인간 유형 같은 것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한 사람의 고유한 감각.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초등학생이고, 날은 한겨울이다. 아이는 연탄재가 뿌려진 가파른 빙판 오르막길을 서둘러 올라간다. 그 길의 끝에는 문방구가 있다. 유리에 잔뜩 김이 서린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간다. 낮인데도 어둑한 실내에는 연탄난로의 온기와 온갖 물건들의 냄새가 가득하다. 아이는 유서 깊은 박물관에라도 들어온 듯 감탄하며 숙연해진다. 주인아저씨의 등 뒤로 새로 진열된 크리스마스 카드가 보인다. 지붕에 소복이 눈이 쌓인 교회가 있는 어느 이국의 풍경. 아이의 입이 벌어진다. 처음 본 그 장소를 동경하기 시작한다.




나의 그리움은 그 아이와 닿아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다시 본다면 진부한 달력 이미지에 불과했을 그 카드 속 장소가 아니라, 세상을 온통 낯설고 신비롭게 느낄 수 있었던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자극에도 쉽게 전율하며 뛰었던 가볍고 투명한 심장의 기억. 함박눈에 포개진 아스라한 음악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종달새와 오래 잊고 있었던 아이를 곁으로 불러왔다. 종종 예술 작품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도무지 만나볼 수 없을 찬란함을 느닷없이 꺼내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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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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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