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엔 해씨 식당

큰고니, 청둥오리, 물닭, 홍머리오리

by 그레텔 그림



한낮에도 영하다. 때가 온 것이다. 비닐백에 해바라기씨를 몇 줌 담아 주머니에 넣는다. 올해의 ‘해씨 식당’을 개시한다. 운영 지점은 총 다섯 곳. 첫 번째는 아파트 단지 안의 넓적 바위다. 해씨 한 줌을 천천히 뿌린다. 배고픈 누군가 몰래 나를 보고 있기를 바라며.



두 번째는 공원 풀밭 한가운데 있는 나무 그루터기다. 아무래도 눈에 잘 띄는 자리라서다. 해씨를 뿌리고 몇 걸음 옮기는데, 똑똑똑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나직한 산수유나무에 오색딱따구리가 매달려 있다. 높은 곳을 선호하는 녀석인데. 먹이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미 말라버린 열매라도 따 먹으려는 것일까. 예민한 녀석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후다닥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미안하게시리.



나머지 세 지점은 새소리가 비교적 활발히 들려오는 곳이다. 넓은 돌을 골라 그 위에 씨앗을 흩뿌린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 공원에는 몇 마리 새들이 겨울을 나고 있을까. 어떻게들 그 작은 몸을 추위로부터 지키고 있을까. 구석구석 다 얼어붙은 세상에서 뭘 찾아 먹을까. 이 씨앗 몇 줌이 과연 도움이 될까. 안다, 결국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한 일이라는 걸. 그렇다 해도 다음 지점으로 걸음을 옮긴다.



호수 표면은 거의 얼어붙었다. 물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개천이 흘러드는 쪽에 웅덩이만 한 수면이 찰랑거렸다. 새들은 거기 있었다. 물닭,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홍머리오리, 그리고 고니들까지. 작은 호수 안에 크고 작은 몸들이 오밀조밀 뒤섞여 있다. 고니 예닐곱 마리가 육중한 몸으로 우아하게 날아와 내려앉는다. 평소였다면 이렇게 가까운 곁을 서로에게 내주지 않았겠지. 닿지 못할 해씨 한 줌을 뿌리고 돌아선다. 예외적인 공존의 풍경에서 나는 멋대로 평안함을 읽어낸다. 돌아오는 길, 산수유나무에는 딱따구리 대신 직박구리가 앉아 있다.



혹시 그사이 누군가 식사를 즐겼을까. 불현듯 궁금해져 1호점 넓적 바위로 향한다. 깍깍깍깍. 찌르르르르. 까치와 물까치 들이 자리다툼 중이다. 미안하게시리.



손님들, 기억하세요. 해씨 식당은 온 세상이 얼어붙은 1월에만 문을 연답니다.






#내 손가락 위의 새

#토요 그림에세이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