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새
지금 막 읽고 싶은 책이 마침 동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간도 있고, 햇살도 좋고, 공기도 깨끗하다. 산책이 걷기 위해 걷는 일이라면, 도서관 방문은 목적이 있으니 아무리 짧다 해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30분, 왕복 한 시간쯤 걸린다. 여행길에 오른다. 약간 들뜬 탓일까. 도서관 가는 길의 풍경이 해상도가 높아진 화면처럼 선명하다.
산수유 꽃이 만개했다. 버드나무 가지들을 감싼 연둣빛 안개가 뽀얗다. 올곧은 가지를 따라 매화 봉오리들이 우아하게 맺혔고, 제 차례를 기다리지 못한 벚꽃은 서둘러 망울을 터뜨렸다. 발아래로는 봄까치꽃이 촘촘하다. 호숫가에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물닭 한 마리가 여유 부리며 부리를 까딱거린다. 흰뺨검둥오리는 온몸을 물에 푹 담갔다가 날개를 펼쳐 요란하게 털어댄다. 작은 새들의 노래는 분주하고 화려해졌다. 기묘한 소리를 뱉던 고라니가 흠칫 멈추어 선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란 작지만 분명한 설렘이다. 대출은 고유한 독서 활동이라서 책을 곧바로 사서 읽으면 이 기쁨을 즐길 수 없다. 나는 도서관 책으로 맛을 보다가 도저히 줄을 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싶으면 구입한다. 원하는 책이 최신 인기작이라면 행운을 잡을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궁금한 책이 주는 조바심, 그것을 손으로 잡는 순간의 짜릿함, 예약자가 되어 기다리는 기대감 같은 것들은 무시하기 아깝다.
나를 기다렸다는 듯 자료실의 문이 스르르 열린다. 서가를 향하는 발걸음은 안도감으로 단단하다. 만석인 카페에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던 친구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볼 때의 기분이랄까. 여유롭게 서가의 숫자들을 눈으로 훑으며 목적지를 향해 다가간다. 서로 다른 크기, 색깔과 글씨체를 가진 책등이 한데 어울려 있는 풍경은 아름답다. 오죽하면 옛 화가들이 책가도를 그렸을까.
가, 나, 다, 라, 마, 바...... 여긴데. 이 책과 이 책 사이. 바로 여기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다. 그새 누가 가져갔나? 아직 서가 정리가 안되었나? 엉뚱한 자리에 꽂아 놓았나? 도대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터져 나오려는 실망의 탄식을 목구멍 안으로 애써 삼킨다. 무해한 도서관 여행에서 가끔 발생하는 반전의 미스터리다. 실종된 책 앞에서 애가 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이 한 시간짜리 여행을 오래오래 평생 즐기고 싶다.
지난 가을에 시작해 6개월 동안 연재해 온 <내 손가락 위의 새 1>를 마칩니다. 본격적인 봄의 시작과 함께 곧바로 브런치북 <내 손가락 위의 새 2>를 이어가겠습니다. 이곳에 연재한 그림들을 3월 26일부터 6월 22일까지 당진에 있는 아미미술관에서 전시합니다. 제철 따라 피는 아름다운 꽃과 울창한 초목들이 다정한 풍경을 이루는 사랑스러운 장소입니다. 4월의 화사한 벚꽃이 피었다 지고 나면 곧이어 우아한 겹벚꽃이 흐드러지고, 6월이면 청량한 수국이 절정을 이룹니다. 좋아하는 꽃이 피는 시기에 방문하시면 충만한 나들이가 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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