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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녜스 Sep 26. 2021

뿌리치기 힘든 고사리 손

대한민국 출산율 반등을 목표로

더듬더듬 나를 찾는다. 온기를 찾는 10개월 된 딸의 손. 아직 내 손 크기의 반의반 밖에 안된다. 새하얗고 작은 손. 마디마디 통통해서 더 보드라운 것 같도 한 아기 손이다.


코코 낸내하라고, 잠투정을 부리며 난리를 치는 아기를 달래며 뉘었다.


감사하게도 정말 감사하게도 내 딸은 누워서 잠이 든다. 수면교육은 은연중에 어찌어찌 된 것 같은데, 정확히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시작되어 8개월부터 본격적으로 분리불안증세가 시작되었다.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분리 수면은 수포로 돌아간 듯하다.


아기 생후 2달쯤 되었을까. 지인인 독일 교포 가족이 우리 부부에게 책까지 추천해주며 조언해준 대로 생후 4개월 전에 분리 수면을 시작했다. 부부가 가족의 중심이 되어야 가정이 화목하다고 생각했고 아기와 내가 둘 다 작은 소리에 민감하여 분리 수면을 결정했다.


'그때까지' 매우 순했던 딸내미는 코코 잘도 혼자서 잠에 들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안방에만 있는 에어컨 때문에 아기와 우리 부부가 함께 자기 시작하면서 분리 수면의 패턴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이앓이와 분리불안으로 아기는 새벽에 한 번씩 깨서 울음을 터뜨렸고 아기 방에서 다시 재우려 했지만 함께 잠들기 전까지 잠을 거부했다.


결국, 다시 침대 옆 바닥에 아기 범퍼침대를 모셔오고, 우리 상전인 딸내미는 침대에서 재운 후 그나마 범퍼침대에 누이기로 했다.


한국 부부가 사랑(?)한다는 패밀리 침대도 있는데, 우리는 한 방에서 같이 자는 걸로 타협을 했다.


이유인즉, 이제 좀 컸다고 퀸 사이즈 부부 침대가 작기도 하고 딸을 가운데 두고 자면 온갖 다양한 방향에서 발길질이 날아온다.


초반엔 왜인지 남편만 발로 차더니, 그냥 그것이 엄마에 대한 딸의 깊은 효심 때문이 아니라 우연이었음을 증명하듯 나도 차기 시작했다.


악몽은 다 딸내미 힘찬 발차기 때문일도.


그래서 방은 한방에서 자되 범퍼침대에서 재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부부 침대에서 잠들고 난 후에 조심스럽게. 온갖 것에 관심 갖고 빠삐용 저리 가라 탈출을 시도하기에, 침대에 가두고(?) 재운다. 그 후 잠들면 내려놓는다.


이 잠들 때가 아주 딸내미의 효심이 지극할 때이다. 자식들이 평생 할 효도를 이때 한창 귀여울 때 다 한다고 하더니, 고사리보다 작은 손으로 엄마 못 가게 슬쩍 팔을 잡는다. 잠이 들면서 아기 팔이 스르르 풀어져도 여전히 턱 하고 내 목 위에 올라있다.


어찌나 보드라운지 어찌나 작은지 어찌나 귀여운지. 동네 사람들 내 자식 보소 하고 팔불출 대장이 되어 자랑하고플 정도이다. 이 정도면 도치맘이 아니라 도치 대왕 맘이다. 기와 이 자는 게 잘됐다 싶다.


무 귀여워서 앞전의 모든 육아의 괴로움과 고통은 다 사라진다. 이 작디작은 아기의 손길에 엄마는 육아의 고통을 기억 저편으로 보내버리고 아기를 더 어찌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만큼 아기는 잘 때 진짜 너무 매우 사랑스럽다. 육아로 걸리는 모든 병의 만병통치약이다. 물론 깨어있을 때도 사랑스럽다. 그래도 단연 새근새근 잠든 아기의 숨이 가슴에 닿을 때 엄마는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영 퍼센트 대 출산율을 극복하는 데에 우리 딸내미 귀여움이, 아니 모든 아기의 코코 낸내하는 귀여 보탬이 되면 좋으련만.


그래야 딸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나라가 없어지지 않을 텐데, 국가의 역할이 시급하다고 영 퍼센트의 출산율 시대에도 겁 없이 아기를 낳은 애국자의 고민이 하나 늘어간다.


물론 내 눈에 내 새끼 예뻐 보이는 것이고 낳고 키우면서 발길질 좀 몇 번 당해봐야 더 그 예쁨을 진하게 느끼는 터라 싱글들에게 '출산 및 육아 오디세이'는 어디 아프리카 부족 이야기쯤으로 듣고 흘려버리고 싶으리라.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는 청춘들에게 자식까지 건사하면서 삶의 무게를 더블로 견디라는 건 실로 가혹하다.


이건 육아에 적합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사회적, 경제적 상대적 박탈감 등을 줄여나가는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 가 출산율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순 없다.


단적인 예로 OECD 국가의 출산율 순위가 GDP 순이 아님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회가 아기를 낳아서 키울 시간을 주어야 한다.


중2병에 걸려 방문을 코 앞에서 방문을 쾅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를 찾는 딸내미의 손길이 아기가 필요한 만큼 이 엄마에게 닿을 수 있도록 아기를 튼튼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지면 우리 모두의 미래는 없다.


태어난 지 10개월 된 딸이 나중에 중2병을 이겨내고 장성해서 마음 편하게 또 다른 도치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로, 이 엄마는 지금부터 만 12년 하고도 2개월 후 즈음에 딸에게 이 글을 보여주며 문은 살살 닫고 들어가라고 할 예정이다. 효도 미리 당겨 받은 게 있어서, 귀여워서 참는다. 절대 네가 무서워서 참는 거 아니다, 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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