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eon May 11. 2022

나도 모르게 이만

이 말을 할 때는 앞에 '후훗'을 붙여도 됨

아이가 1학년일 때. 혼돈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 엄마, 선생님이 창문을 스시로 닦으라고 했는데 어떻게 스시로 창문을 닦을 수 있어?


참아야 한다.. 웃으면 안 된다..

선생님이 '수시로'라고 말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지만 난데없이 웃참챌린지가 시작되었다.

너무 귀여워서 나오는 웃음이지만 내가 웃으면 아이가 싫어한다.



2학년이 되고 이제 우리말 작가의 딸 답게 실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귀여운 말들을 한다.


- 나도 모르게 이만


아이가 이 말을 할 때 가장 귀여운 점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한다는 것.

이 문장의 앞이나 뒤에 '후훗'을 붙여도 좋다.



지난 주말에는 동화책을 읽고 책 속에 나오는 물건을 만들어 보는 수업을 다녀왔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페이스페인팅'을 해준다고 말하자 아이가 '그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응 이건 얼굴에 색칠을 하는 건데.. 라고 설명을 시작하자 아이가 큰소리로 'Ah! Fㅔ이스 Pㅔ인팅! 알아요 알아'라고 외쳤다.


사실은 아이가 이미 아는 거지만 F발음이 없는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모른다고 말한 것이 이번이 Fㅓ스트 타임은 아니다. 듣는 선생님은 어이가 없었겠지만 거기에다 대고 '아.. 사실 아이가 영어가 더 편한 아이라서요.. 어쩌고 저쩌고' 변명하는 시기는 지났다. 올해부터는 셧업하는 중이다.



영국에서 살던 집은 FLAT이었다. 'flat에 살아요? house에 살아요?' 이 말은 '아파트에 살아요? 주택에 살아요?'라는 뜻이다. 영국에 있는 동안 세 군데의 flat에서 살아봤는데 모두 아파트 방송이 없었다. 한국의 아파트에는 방송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큰 소리가 굉장히 듣기 싫다.


어느 날, 로봇이 읽어주는 또박또박 아파트 방송이 시작되었는데 아파트에서 녹물이 나올 예정이라는 소리였다. 아이는 '녹물'은 몰라도 '눈물'은 알기에 아파트에서 눈물이 나올 예정이라고 들었다.


- 엄마, 아파트가 이따가 울 거래!




아이만 실수를 하지 않는다. 나도 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엉덩이 탐정>에 빠져 있는 아이. 갑자기 '괴도'가 뭐냐고 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책에 괴도가 나오나보다.


나는 '궤도'로 들었다. 행성, 혜성, 인공위성 따위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다른 천체의 둘레를 돌면서 그리는 곡선의 길(표준국어대사전). 어어.. 궤도는 말이야 우주에 있잖아 지구 주변을 빙빙 도는데 말이야


- 음.. (엄마가 또 잘못 알아들었군, 이라는 뜻이다)


괴도는 '괴상한 도둑'을 뜻한다. 직역하면 A mysterious thief/A phantom thief. 나에게 괴도는 어릴 때 들어본 '괴도 루팡' 정도인데(위키에서는 모든 괴도들의 조상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것도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괴도 뤼팽(Arsène Lupin)'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건 완전 뱀발인데, 검색을 하다가 샤이니 태민이 '괴도'라는 노래를 낸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영어 제목은 danger인지는 모르겠지만. (케이팝 입문 n개월차, 한글 제목과 영어 제목은 똑같지 않아도 되더라)


10대에도, 20대에도 심지어 30대에도 안 듣던 케이팝을 듣는 요즘. 너무 좋다.

앗 나도 모르게 이만 글이 다른 곳으로 새어버렸군요.






매거진의 이전글 Wallpap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