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벡 유어 파든?
내 아이는 눈이 커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눈만 땡그랗게 도드라져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눈이 클수록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한국에서 우물안개구리로 살던 나. 처음에 외국에 갔을 때 서양인들에게 'WOW 너 얼굴 크기가 미쳤네 완전 작네 사라지겠네'따위의 말을 칭찬으로 알고 했었다. 나중에서야 그게 그들에게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지만. 심지어 '머리가 작으니까 내가 뇌가 작고 결국 내가 멍청하다는 뜻으로 한 말이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때부터는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아니다, 말은 똑바로 하자. 외모에 대한 칭찬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도 내 아이돌, 내 배우 잘생겼다는 말은 내 집에서 5초에 한번씩 하니까.
이 말은 밖에서 사람들이 내 아이의 땡그란 눈만 보고 외모 칭찬을 해대도 기분 좋게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두려웠다. 예뻐서 좋은 일 못지 않게 예뻐서 안 좋은 일도 수없이 봐왔다. 평생 주변에 예쁜 친구들을 둔 덕에 잘 안다. 내 친구들이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자주 놓였는지.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을까? 글쎄다. 최근에 대한민국 완도에서 '극단적인 아동학대 범죄'로 분류되는 사건이 있었다. 조유나 양 실종사건이다. 나는 실시간으로 티비 뉴스를 보고 있었고 방송사에서는 시청자와의 소통을 위해 시청자들이 보내는 실시간 문자를 뉴스 하단에 자막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믿지 못할 자막이 흘러나왔다.
- 애도 예쁘게 생겼던데.. 안타깝네요. (시청자 OO님)
뭐라고? 크지 않은 내 두 눈이 내 아이의 눈처럼 퀭하고 땡그래졌다. 거기서 열 살 아이 외모 얘기가 왜 나오지? 실종사건에서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머리카락의 길이가 어떻고 살갗의 색이 어떻고 흉터가 어디에 있고 정도여야지 왜 거기서 예쁘다 안 예쁘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설사 시청자가 그런 문자를 보냈다고 하더라도 방송사에서 자막으로 내보내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내가 생방송 현장에 있었다면 안 그러고 싶었을 것 같다.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이 문자는 내보내지 맙시다, 했을 거다. 물론 나도 방송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실수들을 했었다. 예를 들면 생방송 중에 기름유출사고가 난 지역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두 번 생각하지 못하고 기름진 땅이라는 표현을 쓸 뻔했다거나. 다행히 중간에 정신을 차려서 입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게 방송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싹한 기분이 들 때가 잦다. 아주 잦다.
문자를 보낸 시청자도 습관적인 외모 칭찬의 일환이었을 뿐이라고,
문자를 내보낸 제작진도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실수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결국 온 가족의 사망으로 끝나버린 이런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아주 조심스러워야 한다. 아직 조사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매우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달리 할 말이 없을 때 우리는 외모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야, 오랜만이다. 머리 잘랐네? 얼굴 좋아보인다. 또는 옷 샀어? 그 색깔 입으니까 얼굴이 사네. 따위의 것들. 날씨나 밥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외모 이야기보다는 낫지 않을까. 날씨와 밥으로 시작했어도 기가 막히게 외모 이야기로 스윽 흘러가기가 쉬운 것이 요즘 말로 '한국인특'이겠지만. 연습하면 될 것이다. 우리 애한테도 '어머 넌 눈이 정말 크다'보다는 '요즘 날씨가 무지 덥지?'정도로 말을 걸어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