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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Sep 07. 2022

청주 당일치기 예고

남들이 여행을 다녀와서 후기를 쓸 때 나는 일단 예고부터 써보기로 한다.


청주가 고향이신 엄마가 친구를 만나러 아주 오랜만에 가신다고 해서 거기에 tag along하기로 한 것이다.

시외버스를 탄다고 했으면 안 따라갔을 지도 모를 일. 60대 후반의 운전을 법으로 막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그냥 내가 같이 가는 것이 마음 편하다. (나도 60대가 되면 운전을 할 수 있는데 왜 못하게 하냐고 화를 내겠지? 그런데 교통선진국의 교통문화와 한국의 그것은 너무 달라서 한국에서는 그래 인심썼다, 70대부터는 운전을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날짜는 일단 13일 화요일로 정했다. 하지만 변동될 수도 있다. 나는 아이 학교 출석에 목매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이야 재미있겠다, 얼마만의 로드트립! 그런데 이미 문제가 생겼다. 12일까지 한가위 연휴인지라 내가 찜콩한 대부분의 구경거리들이 13일에 휴관하는 것이다.



https://cheongju.go.kr/cjbaekje/index.do

https://cheongju.go.kr/jikjiworld/index.do#n

https://mmca.go.kr/

야심차게 가보려고 했던 세 군데의 관람거리가 휴관으로 인해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초저(초등학생 저학년)와 전부 다 가는 것 자체도 무리였다. 고학년은 가능할까? 궁금하다.


겨우 차로 한두시간 거리 지역에 가는 거면서 이렇게 해외여행하듯 계획을 세우는 게 맞나 싶다. 영국 거주 시절, 차로 한두시간 거리 프랑스에 놀러갈 때도 이런 긴장감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프랑스에는 놀러간 것이 아니라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가기 위해 잠시 스쳐 지나간 것일 뿐이다)


그러면 어쩔  없다. 온갖 동네에  존재하는 '-리단길' 가는 수밖에. 그렇다. 청주에도 운리단길이라는 곳이 있다.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건희컬렉션의 김환기 작품을 보려고 했던 계획은 이제 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거품이 되었다’라는 표현처럼 뻔하디뻔한 카페에 앉아 나는 플랏화이트를 마시고 아이는 망고요거트스무디를 마시는 지긋지긋한 그림을 그려본다.


갑자기 고속도로까지 탔는데 괜히 멀리 끌려와서 똑같은 망고요거트스무디를 마시고 있을 아이가 불쌍해진다. 안되겠다. 청주랜드를 검색해보자.


https://www.cheongju.go.kr/land/index.do

이런 제길! 휴관이다. 그러면 대통령 별장이라는 청남대는 어떨까? 숲해설도 있다던데.


https://chnam.chungbuk.go.kr/

연다! 얏호! 그런데.. 청주에서도 50분 정도 더 가야한다. I can't risk it. 패스하도록 하자. 이밖에도 문의문화재단지, 상당산성 등 초록초록한 곳들이 더 있지만 2-30분씩 더 운전해서 가야 하는 곳은 패스.


결론


문화제조창-수암골-운리단길-육거리종합시장


이 정도면 초저와 두발로 거뜬하지 않겠나

차를 가져갈 거지만 구경 다닐 때는 짐이 될 것 같으니 그냥 엄마 친구 집에 놔두고 택시를 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찾아보니 청주는 뚜벅이들이 당일치기하기 좋은 곳으로 설명하는 블로거들이 많다.


옛날에 서울촌년이라는 말이 있었다. 요즘엔 지역감정 어쩌고 하면서 큰일날 단어가 되었지만 내가 바로 그 서울촌년이다. 지금은 서울도 아니니까 경기남부촌년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촌년들은 도시년들보다 훨씬 더 세련됐고 아는 것도 많다.


참 희한하다. 초등학생 때 친구와 버스를 처음 탔을 때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동네를 벗어나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초중학년 시절. (요즘엔 초저1-2학년, 초중3-4학년, 초고5-6학년으로 구분한다고) 나는 혼자있을 때보다 아이랑 있을 때 더 용감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두려울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엄마 고향인 청주 따위에 가는데 이렇게 긴장할 일이냐. 그 긴장을 풀겠다고 브런치에서 시간을 보낼 일이냐.


지난 밤에 내가 자주 가는 지역카페에서 런던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글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거기에 아는 지식을 다다다다 뽐내던 나는 어디로 갔냐. 런던보다 청주가 더 떨릴 일이냐.


아이가 외할머니의 고향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외할머니의 외가 '바깥 외'라서 싫다고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는 아이가 한국에서 두 번째 방문하는 서울/경기 이외의 지역이다. (첫 번째는 부산이었다)  


나는 청주가 너무 서울 같지 않기를 바란다. 청주 만의 색을 뿜뿜 뽐내면서 우리를 맞이하기를 기대해본다.



*이 글을 쓸 때 청주에 '내려간다'고 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썼음을 밝히고 싶다. 서울 중심의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고 배웠다. 지역 차별은 관계에 불균형을 가져온다. 그래서 세계지도도 뒤집어서도 보고 아프리카를 중심으로도 보라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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