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장난감을 조립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면 남편은 꼭 이렇게 말했다. '이걸 몰라? 딱 보면 이렇게, 요렇게, 이걸 이렇게 돌리고 저걸 저렇게 돌려야 움직이겠다는 느낌이 안 들어?'
- 어. 안 보여. 딱 봐도 그렇게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나는 안 들어.
남편이 딸아이 머리카락을 잘 묶거나 땋지 못해서 쩔쩔 매며 '아 몰라,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라고 말할 때 똑같이 말해주었다. '이걸 몰라? 딱 보면 이렇게. 요렇게. 이렇게 돌리고 저걸 저렇게 돌려야 땋아지는 걸 모르겠어?'
그날은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이상하게 나가고 싶어했다.
낮에 한번 나갔다 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저녁 8시에 다시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깜깜한데 또 나가자고?
ㄴ응, 우리 밤에 안 나가봤잖아. 나 밤에 나가보고 싶어, 엄마.
그렇게 시작된 둘만의 어드벤처타임.
먼저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는 게 눈에 띄어 하늘을 보라고 말했다.
저쪽은 밝은데 이쪽은 깜깜하잖아? 왜 그럴까?
ㄴ왜냐하면 여기는 먹구름이 있는 거야!
나는 스마트폰에서 나침반을 열어 보여주었다. 동서남북은 못 알아들어도 NORTH SOUTH EAST WEST는 알아듣는 아이에게 해가 서쪽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저쪽이 밝고 이쪽은 깜깜하다고 말해주었다. 어른인 우리가 딱 봐서 아는 걸, 초등학교 2학년인 7살은 (생일 안 지났으니까) 모를 수도 있는 거다. 발도로프식인지 몬테소리식인지 어쨌든 좋다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5살도 아는 걸, 본 적이 없거나 배운 적이 없는 초2는 모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딱 보면 몰라?'라는 말이 너무 싫다. 본 적이 없고 배운 적이 없는 걸 어떻게 딱 보았을 뿐인데 안단 말인가.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이번엔 안 그래도 작은 얼굴을 더 작게 접고 있는 꽃들이 눈에 띄었다. 원래 이름은 개망초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고 달걀꽃, 달걀프라이꽃이라고 부르는 꽃이었다(난 어릴 때 계란꽃이라 불렀다).
개망초가 원래 해가 지면 꽃잎들도 접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날 저녁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구글에 do daisy close at night라고 검색해보니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검색하다가 더불어 알게 된 건 무궁화도 밤에 지는 꽃이란다. 밤에도 피는 무궁화가 있는데 '안동무궁화'로 한번 피면 36시간 피어있는다고. 이렇게 꽃 지식이 +1 상승했습니다.)
이 꽃들 좀 봐. 낮엔 안 그랬는데 다 접히고 있잖아. 이것도 밤이라서 그런 거야.
여기까지만 하면 무슨 한적한 시골에 사는 줄 알겠다. 나는 사실 학군 좋다는 복잡한 도시에 살고 있는데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걷는 거리에 있는 2마트에 들르기로 한다. 낮에만 방문하는 2마트는 밤에 가니 정말 한산했다. 진작 밤에 다닐 걸 그랬나보다. 요즘 닌*도 게임을 즐기는 아이와 게임 코너에 갔는데 여기서도 저녁 외출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을 알게 되었다. 게임기 뒤에 있는 플립이 무슨 덮개인 줄 알고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걸 열면 세워둘 수 있는 거였다... 아이가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옆에서 말을 덧붙인다.
거봐, 엄마. 밤에 안 나와봤으면 이것도 모를 뻔했지?
아마 남편이라면 그 플립을 '딱'보고 세울 수 있게 만든 거구나, 하며 알았을 지도 모르겠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고도 서쪽이 어디인지 모를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꽃이 왜 밤엔 꽃잎을 접는지 모를 수 있어. 주로 낮에만 봤으니까. 게임기 뒤에 있는 덮개처럼 생긴 부품이 덮개가 아니라 거치대? 스탠드?였음을 모를 수 있어. 어른인 나도 딱 봐도 전혀 모르겠던 걸.
한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제목에 [그럴 수 있어]가 들어간 새 책도 그 즈음에 여럿 출판되었다. '딱 보면 몰라?' 대신에 '그럴 수 있어.'를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바로 내 세상이기를,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