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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Jul 31. 2022

딱 봐도 모를 수 있다

새로 산 장난감을 조립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면 남편은 꼭 이렇게 말했다. '이걸 몰라? 딱 보면 이렇게, 요렇게, 이걸 이렇게 돌리고 저걸 저렇게 돌려야 움직이겠다는 느낌이 안 들어?'


- 어. 안 보여. 딱 봐도 그렇게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나는 안 들어.


남편이 딸아이 머리카락을 잘 묶거나 땋지 못해서 쩔쩔 매며 '아 몰라,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라고 말할 때 똑같이 말해주었다. '이걸 몰라? 딱 보면 이렇게. 요렇게. 이렇게 돌리고 저걸 저렇게 돌려야 땋아지는 걸 모르겠어?'



그날은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이상하게 나가고 싶어했다.

낮에 한번 나갔다 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저녁 8시에 다시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깜깜한데 또 나가자고?

ㄴ응, 우리 밤에 안 나가봤잖아. 나 밤에 나가보고 싶어, 엄마.


그렇게 시작된 둘만의 어드벤처타임.


먼저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는 게 눈에 띄어 하늘을 보라고 말했다.


저쪽은 밝은데 이쪽은 깜깜하잖아? 왜 그럴까?

ㄴ왜냐하면 여기는 먹구름이 있는 거야!


나는 스마트폰에서 나침반을 열어 보여주었다. 동서남북은 못 알아들어도 NORTH SOUTH EAST WEST는 알아듣는 아이에게 해가 서쪽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저쪽이 밝고 이쪽은 깜깜하다고 말해주었다. 어른인 우리가 딱 봐서 아는 걸, 초등학교 2학년인 7살은 (생일 안 지났으니까) 모를 수도 있는 거다. 발도로프식인지 몬테소리식인지 어쨌든 좋다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5살도 아는 걸, 본 적이 없거나 배운 적이 없는 초2는 모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딱 보면 몰라?'라는 말이 너무 싫다. 본 적이 없고 배운 적이 없는 걸 어떻게 딱 보았을 뿐인데 안단 말인가.


동네  바퀴를 돌고 나니 이번엔  그래도 작은 얼굴을  작게 접고 있는 꽃들이 눈에 띄었다. 원래 이름은 개망초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고 달걀꽃, 달걀프라이꽃이라고 부르는 꽃이었다( 어릴  계란꽃이라 불렀다).

개망초가 원래 해가 지면 꽃잎들도 접히는지는  모르겠다. 그날 저녁  눈엔 그렇게 보였다. 구글에 do daisy close at night라고 검색해보니 그러는  같기도 하다. (검색하다가 더불어 알게   무궁화도 밤에 지는 꽃이란다. 밤에도 피는 무궁화가 있는데 '안동무궁화' 한번 피면 36시간 피어있는다고. 이렇게  지식이 +1 상승했습니다.)


이 꽃들 좀 봐. 낮엔 안 그랬는데 다 접히고 있잖아. 이것도 밤이라서 그런 거야.


여기까지만 하면 무슨 한적한 시골에 사는 줄 알겠다. 나는 사실 학군 좋다는 복잡한 도시에 살고 있는데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걷는 거리에 있는 2마트에 들르기로 한다. 낮에만 방문하는 2마트는 밤에 가니 정말 한산했다. 진작 밤에 다닐 걸 그랬나보다. 요즘 닌*도 게임을 즐기는 아이와 게임 코너에 갔는데 여기서도 저녁 외출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을 알게 되었다. 게임기 뒤에 있는 플립이 무슨 덮개인 줄 알고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걸 열면 세워둘 수 있는 거였다... 아이가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옆에서 말을 덧붙인다.


거봐, 엄마. 밤에 안 나와봤으면 이것도 모를 뻔했지?

아마 남편이라면  플립을 ''보고 세울 수 있게 만든 거구나, 하며 알았을 지도 모르겠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고도 서쪽이 어디인지 모를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꽃이 왜 밤엔 꽃잎을 접는지 모를 수 있어. 주로 낮에만 봤으니까. 게임기 뒤에 있는 덮개처럼 생긴 부품이 덮개가 아니라 거치대? 스탠드?였음을 모를 수 있어. 어른인 나도 딱 봐도 전혀 모르겠던 걸.


한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제목에 [그럴 수 있어]가 들어간 새 책도 그 즈음에 여럿 출판되었다. '딱 보면 몰라?' 대신에 '그럴 수 있어.'를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바로 내 세상이기를,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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