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se를 발음하는 두 가지 방법
나는 영어가 좋고 문학도 좋아서 영문학과를 지원했고 거기를 졸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활 영어가 좋았고 한국 문학이 좋았던 건데 잘못된 선택이었지 싶다. 문예창작을 복수전공한 게 그나마 위로가 된다.
영문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다들 영어를 잘하는 줄 안다. 외국인처럼은 못해도 본인들보다는 잘하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짜 영어는 미드나 팝송에 있었다. 나는 영어를 문화로 배웠다. 영미 문학 속 영어는 지금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영미 문학 작가를 대라고 해도 대답을 못하겠다. 부끄럽기만 하다.
영국에 삶이 있는 사람과 만났고 영국으로 함께 가기로 결정했을 때 깊숙하게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내가 영국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어쩌다보니 영어와 참 밀접했다.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미드와 영드, 팝송에 빠졌고 취하면 헛소리를 영어로 했고 영어 방송국 일도 하고 외국인 동료, 친구들도 많았다. 계획한 건 아무 것도 없었는데 결국 영국에 와서 살고 있기까지 하다.
영국에 와서 1년 동안은 티비만 봤다. 도대체 영국 영어가 안 들렸기 때문이다. 영문학과 나오고 미드 영드 팝송 방송국 파란 눈의 친구 다 소용없었다. 안 들렸다. 그래서 라디오와 티비를 열심히 듣고 봤다. 꽃병을 뜻하는 Vase가 베이스에서 바즈로 입력이 될 때까지 그렇게 했다. 이상하게 미국 드라마는 설거지 하면서 듣기만 해도 내용이 흘러가는 걸 따라갈 수 있었는데, 영국 드라마는 초집중해서 티비 앞에 앉아서 자막까지 켜고 보아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들 영국 영어 발음이 멋지네 뭐네 하는데 안 들리니까 짜증만 나고 멋있지도 않았다.
Water. 워러가 워터인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외래어표기법에도 미네랄워터지, 미네랄워러는 아니니까. 그런데 바즈는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여태 베이스라고 가르치는 나라에서 살다가 갑자기 바즈라니.. 그럼 Base도 베즈냐? 그건 또 아니다. 야!!!
한국에서는 신제품 런칭 행사를 한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여태 런칭 행사가 점심 같이 먹는 행사인 줄 알았단다. lunching. 뭔가를 새로 출시하는 걸 말하는 launch라면 런칭이 아니라 론칭이라고 해야 더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웹사이트를 가보니 아직 규범표기는 미확정이라고 하지만 런칭과 론칭, 구분해야 될 것 같긴 하다.
유명 브랜드이거나 디젤 차량을 뜻하는 Diesel에도 시비를 거는 남편. 해외에서는 안 그러는데 한국 광고를 보면 분명히 성우는 적어도 교포이거나 외국인인데 왜 일부러 '디젤'이라고 틀리게 발음하냐는 거였다. 원래 발음은 '디즐'이다. 그게 한국에 가면 디젤이 된다.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이 사람 앞에서 택시 타고 ‘그리니치로 가주세요’하면 큰일난다. 그리니치의 정확한 영국 발음은 그레니치다. 그리니치는 미국식, 그레니치는 영국식 발음이다.
프리미어 리그, 할 때 프리미어는 어떨까. 아는 영어니까 자신감 있게 프리미어네? 라고 말하는 나를 보며 '에.... 틀렸어.' 한다. '아 뭔데 이번엔...'
영국에서는 프레미어란다. 참나...
'그럼 프리미엄도 프레미엄이냐?' '아니, 그건 그냥 프리미엄이야.'
아우.. 집에 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