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뎅글뎅글

재미있는데 재미없습니다

by Aeon Park

나는 사석에서 말을 재미있게 하는 편인데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썰푼다'랄까. 내가 겪은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말을 하다보니 듣는 사람이 반응 없을 부분은 빼고 반응이 좋았던 부분은 넣고 하는 작업을 거쳐서 결과적으로는 늘 재미있는 사건 사고들이 많았던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내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한 사람에서 생각이 멈췄는데 그 사람은 내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우와! 재미있다!'라며 격한 반응을 해주고 분명히 평소에도 나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도 그 사람이 밝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 좋다. 지금도 편하게 잘 지내는 지인. 그런데 내 이야기가 분명 재미와 관련 없는 이야기였음에도 거기에 똑같이 '와! 재밌다!'라고 반응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 사람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이 분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도 바로 알아차리긴 했다. 이건 그 사람이 소위 '영혼이 없는 리액션'을 하는 게 결코 아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고 그냥 '어어 응응' 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건 이 분이 다양한 표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로 '너무'가 있다. 우리는 '너무'를 대체할 수 있는 많은 표현이 있음에도 그걸 잘 알지 못해서- 또는 써본 적이 없어서- 그냥 무조건 '너무'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국립국어원에서는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던 '너무'를 단순히 'very'의 뜻으로 인정해버리고야 만 것이다.


국어학자는 아니지만 어원 알아보기를 좋아하는 내가 20여년 동안 우리말덕질을 하며 알아낸 바로는 '너무'는 '넘다'의 '넘'을 어원으로 한다.


표준국어대사전

너무<석상><너므-←넘-+-으-


뭔가가 넘친다, 요즘 말로 선 넘는다는 게 '너무'가 되어서 원래는 '너무 안 좋다'처럼 부정적인 문장에만 쓸 수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처럼 쓰이고 지금은 부정 긍정 가리지 않고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완전 오바육바이지만 혹시 '재미있다'는 말도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내 이야기에 무조건 '재미있다'고만 반응하는 사람을 보면서.


* 재미있네! (100년 뒤 사전)

<감탄사> 어떤 이야기를 열심히 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잘 들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말


뭔가 코믹한 썰이었다면 몰라도 그런 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내가 양념을 쳐서 이야기했더라도 재미있다는 말 보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네' '한번 생각해볼 만한 일이네' 등 다른 다양한 반응을 받아보고싶다. 내 지난 이야기는 주로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분명 있고, 그 이야기를 하고나서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재미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아기자기하게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나 느낌이 있다.


뱀발

재미의 어원은 <滋味이다

'자미'는 자양분이 많고 맛도 좋음. 또는 그런 음식을 뜻하는 말인데 이야기를 1)맛깔나게 하다, 2)재미있게 하다, 3)맛있게 하다, 이 세 개가 다 같은 뜻인 이유, 알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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