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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pr 17. 2023

운전대를 놓지 않는 68세 엄마

50대 사촌오빠와 지난 가족모임에서 만났다. 오빠는 허리가 너무 아프다며 엊그제 어느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 받혀서 차가 망그러졌다고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 오빠 죽을 뻔했네.. 하면서도 멀리 갈 것도 없어, 우리 엄마도 그렇~~게 운전하지 말라고 해도 안 들어. 운전대 놓으면 정신줄 놓는 줄 알아, 라고 말했다. 오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작은 어머니 운전 못 하시게 막아라..'라고 했지만 '그 할머니가 내 말 듣냐?!'라는 소리밖에 할 수 없었다.


이 대화가 있고 며칠 뒤.

주말농장에 갔다가 남의 차를 긁었다고 보험사와 통화하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아이고두야 아이고심이야 내가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할머니가 차 긁었대..'라고 딸에게 이르자 '할머니!! 이제부터 운전하지 마! 열쇠 빼앗을 거야!'하고 대신 잔소리해주는 8세가 내 옆에 있다. 다행히 이 8살은 68세와 달리 내 말을 잘 듣는다. (아직은)


올해 과태료와 사고처리하는 일이 현저히 잦아졌는데도 운전대를 포기하지 않는 68세 엄마를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장롱면허였던 적이 없는 22년 무사고(한국12년+영국10년)인 나라도 오로지 늙었다는 이유로 운전을 하지 말라고 하면 너무너무 서운하겠지만 그건 범칙금과 벌점과 보험회사 전화가 오지 않았을 때 얘기.


정점은 작년에 셋이 청주에 갔을 때였다. 엄마 고향인 청주에 차를 몰고 가신다고 해서 내가 같이 가겠다고 한 참이었다. 외출준비를 하고 주차장에 내려가자 엄마가 운전석에 먼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내려, 내가 할 거야'라고 말해도 '아 됐어! 내가 할 거야. 올 때 네가 하면 되잖아'라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고집을 꺾지 못하고 8세와 함께 뒤에 앉았다. 고속도로에서 두근두근대는 심장을 몇 번이나 꺼냈다 집어넣었다 하면서 겨우 휴게소에 들렀는데 운전석에서 백발노인이 내리고 뒤에서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내리니 휴게소의 모든 어르신들이 눈으로 잡도리를 하는 느낌이었다.  


-엄마 여기서부터라도 내가 할게

-아 싫다니까 얘가 왜 이래 나 할 수 있어


엄마에게는 이게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인 것이다. 엄마도 수십년동안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 사시면서 큰 사고 없이 운전을 하셨고 나름대로 주변에서는 운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자꾸 그걸 놓으라고 하니 짜증이 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스마트폰 앞에서, 복잡한 온라인 신청폼 앞에서 점점 못하는 것이 많아지는 68세의 삶에서도 운전은 아직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청주에 도착해서 엄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나는 아이와 청주 구경을 했다. 집에 가는 길은 내가 운전하기로 했으니까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못하고 물이나 마시면서 한나절 구경을 했다. 각자 일정을 마치고 저녁 때 만난 우리 모녀. 엄마는 친구들에게 무진장 혼났다고 먼저 얘기를 꺼냈다.


-친구들이 왜 내가 운전을 하냐고 뭐라고 하더라. 그게 딸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딸내미 욕 먹이는 짓이래.


엄마는 나를 위해서 운전을 한 건 아니다. 자기가 아직 할 수 있음을 매일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최근에는 갑자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한 달 이상 먼 길로 학원도 다니셨고 시험도 치르셨다. 그리고 합격하셨다.


- 그 주말농장 말이야.. 앞으로는 지하철 타고 가려고. 그렇게 멀지도 않아.


운전대를 영원히 놓겠다는 말은 아직 안 하시지만 이번 긁힘사고로 눈치는 보이시나보다.


만 65세에서 70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10에서 30만원 상당의 교통복지카드, 지역화폐 등을 지원한다고 한다. (지자체 별로 다름)


최소 10만원 받자고 면허증을 반납할 분은 결코 아니시지만 제발 운전대는 잡지 않으셨음 좋겠다. 면허증 반납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운전대는 둘이 있을 때 내가 기절이라도 해서 갑자기 병원 응급실이라도 가야할 때, 뭐 이렇게 극단적으로 아주 긴박한 상황에서만 잡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솔직히 그렇게 극단적으로 긴박한 상황에서도 운전대 말고 전화기를 잡고 119를 부르셨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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