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여러분에게 토스해볼까
MBC 라디오 우리말나들이 원고를 쓰다가 지금 브런치로 왔다. 어딜 찾아봐도 '벙어리 저금통'을 대체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땐 주로 '대체할 말은 없는지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등으로 청취자에게 뒷일을 토스하고 한걸음 물러서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여기로 왔다. 방송 전이라 청취자의 의견을 들을 수 없으니 브런치 구독자에게 댓글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벙어리 저금통'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를 보자.
벙어리 저금통: 푼돈을 넣어 모으는 데 쓰는 조그마한 저금통. 돈을 넣는 작은 구멍만 있고 꺼내는 구멍이 없으므로, 꺼낼 때는 부수어야 한다. 원래는 질그릇으로 만들었으나 요즘은 주로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비슷한 한자어로 박만 撲滿, 항통 缿筒/缿筩이 있었다. 언어 장애인을 비하하는 '벙어리'를 쓰느니 다시 조선시대에 쓰던 어려운 한자어로 돌아가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나들이 작가 20년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가동시키니 '일회용 저금통', '한구멍 저금통', '못 여는 저금통'정도가 출력됐다. 짬바가 무색하게도 모두 쏙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일회용 저금통은 용어가 자연친화적이지 않은 것 같고, 한구멍 저금통은 돈을 다시 꺼낼 수 있는 저금통을 두구멍 저금통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싶고, 못 여는 저금통은 부수면 사실 열 수 있으니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벙어리 저금통은 여기까지 정리해두고, 그렇다면 벙어리 장갑은 또 어떤가. 해외에 살면서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mitten이라고 말할 때가 좋았다. 이런 건 외래어로 얼른 들여왔어야지 왜 못 들어왔나 싶기도 하다. 아마도 벙어리 장갑이라는 낱말이 너무 오랫동안 널리 쓰였기 때문이겠지.
벙어리 저금통과 달리 국립국어원에서는 이 말을 다듬은 적이 있다. 순화어는 손모아 장갑이다. 그런데 이것도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닌 것이 순화한 지 꽤 되었는데도 우리 말글생활에 정착하지 못했다. 나는 2000년 초 '리플'이 '댓글'로 빠르게 정착하는 걸 실시간으로 본 세대이기 때문에 언중의 공감을 얻으면 어려울 것도 없다는 걸 안다. 아마도 손을 모았다는 건 손가락이 붙어있는 이미지와는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차라리 내 시대의 HOT, 요즘 시대의 NCT DREAM의 힘을 빌려 캔디 장갑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러면 찰떡같이 알아듣는 MZ가 더 많을 것 같다. 이거 말고도 우리말샘에는 엄지 장갑이라는 표현도 있었는데 예쁜 표현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엄지 장갑이라고 검색하면 엄지에만 끼우는 골무 같은 작은 장갑이 검색된다는 걸 보고 다시 좌절했다. (게임용 장갑인 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캔디 장갑 원픽이다. 어르신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70년대생부터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어르신들이 벙어리 장갑이라는 차별 용어를 만들어내고 여태 널리 쓰이게 놔둔 죄로 캔디 장갑이 뭐냐고 물으시는 수고 정도는 해주셨으면 합니다. (소신발언)
그런데 캔디도 외래어이긴 한데..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