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서 교육으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육아'를 찾아보면 '어린 아이를 기름'이라고 한다.
'교육'은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이라고 하고,
'양육'은 '아이를 보살펴서 자라게 함'이라고 한다.
내친 김에 순우리말 '기르다'도 찾으면 '아이를 보살펴 키우다', '사람을 가르쳐 키우다' 등의 뜻풀이를 볼 수 있다.
4살. 이제 육아는 끝난 것 같다. 여전히 어린 아이를 기르고 있지만 육아라고 하면 뭔가 육체적인 느낌이 든달까. 기저귀를 사고,채우고, 갈고, 버리고. 음식을 사고, 만들고, 먹이고, 치우고. 교육이라고 하면 기저귀를 하면 안 되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어느 음식에 어떤 영양소가 어떤 역할을 하니까 그걸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일이랄까.
학교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에게 육아 시절에는 '사탕 주면 갈래?'라고 말했다면, '아빠도 엄마도 매일 일하고 있지? 그런 것처럼 너도 학교에 가는 거야. 엄마도 아빠도 너 나이에는 매일 학교 갔어.'라고 말하는 게 교육이랄까.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지 끊임없이 이해시키고 가르치는 것.
우리 엄마도 나에게 그랬을 거다. 육아에서 교육으로 넘어가는 시절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친정엄마가 내게 하지 않았던 말을 한다.
나는 친구들과 똑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똑같은 학교에 다녔으며 우리 모두는 다 한국인이었다.
우리 엄마는 요즘 엄마들이 하지 않았던 고민을 하셨겠지만 반대로 요즘 엄마들이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친정엄마에게 들어보지 못한 것들을 내 아이에게 설명한다. 왜 샬럿의 머리카락은 하얀색에 가까운 노란색인지, 왜 그걸 금발이라고 하는지, 왜 그게 검은색 머리카락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인지, 그렇다고 검은색 머리카락이 금발보다 낫다고 말할 수도 없는지, 왜 미도리는 영어와 일본어를 함께 말하는지, 왜 이자벨라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같이 말하는지, 왜 너는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말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에게는 이자벨라라는 똑같은 이름의 친구가 둘이 있다. 둘 다 엄마는 남미인, 아빠는 영국인인 아이들이다. 그런데 한 명은 어두운 피부색이고 다른 한 명은 창백한 피부색이다. 그 둘을 비슷한 시기에 만나게 되었을 때 엄마들끼리는 한 명은 이자벨라, 다른 한 명은 벨라라고 부르기로 약속했다.
나중에 우리 아이는 벨라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벨라라는 이름은 사실 우리끼리 정한 약속이었으니까 학교 선생님들은 벨라를 본명인 이자벨라로 부르기 시작했고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벨라를 이자벨라라고 부르니까 혼란스러워했다. 어느 날 아이는 자기 생각대로 'Dark skin 이자벨라'와 'Bright skin 이자벨라'로 구분헤 부르기 시작했다. 틀린 건 아니었지만 Dark skin은 Bright하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기에 멈출 필요가 있었다.
어둡다는 것과 밝다는 것은 상대적인 거야. 이 색이 저 색과 있으면 더 밝아보이지만, 사실 요 색하고 같이 있으면 더 어두워보이지? 혹시 알아? 더 밝거나 더 어두운 이자벨라를 나중에 만나게 되면 그땐 더 헷갈리겠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OO의 딸, 이자벨라', 'XX의 딸, 이자벨라' 이렇게 구분해서 부를까?
아이는 그때부터 엄마들 이름으로 이자벨라를 구분한다. 친정엄마는 할 수 없었던 말이다. 한국에서는 어른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니까.
만약 둘이 사는 동네가 다르다면 동네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거다. '여기 사는 이자벨라'와 '저기 사는 이자벨라'로. 그런데 그 둘의 동네는 빈부격차가 있어서 그건 또 다른 차별을 낳는 말이 될 수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이가 피부색으로 친구들을 구분해 불렀다고 해서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건 아니다.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다른 색을 다르다고 표현했을 뿐이므로. 그런데 그걸 그냥 귀엽다고 놔두면 나중에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는 국어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르쳐서 인격을 길러주고' 싶었다. 왜 어른의 삶에서 어두운 것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는지, 밝은 것이 더 좋은 게 되었는지, 왜 화장품 광고에서는 모두 bright skin을 만들어준다고 하는지, 그게 옳은 표현이었는지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