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다섯번이나 썼네?
이제 세계 유명 관광지에 쓰여 있는 한글 낙서는, 사실 한국인이 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예전 같으면 무조건 '못난 한국인'이 인증의 개념으로 '개념없이' 휘갈긴 거였겠지만 지금은 한류를 타고 외국인들도 한글을 그린다. 특히 한국의 보이그룹/걸그룹 멤버의 이름이 삐뚤삐뚤하게 에펠탑 어디엔가 '그려져'있다면 그건 한국인이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는 와중에 아직도 세계 지도는 갈 길이 멀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방송작가수첩에는 뒤에 지도가 붙어있다. 나를 만나는 외국인들이 한국 안다고 할 때마다 어디 붙어있는 지도 아냐고 묻고, 모른다고 하면 그 수첩을 펼쳐서 가르쳐준다. 분명 중국이 어디있는지도 알고 일본이 어디인지도 알면서 손가락으로 그 주위를 빙빙 가리키며 '에..이 주변 어디인데..? 맞지?'라고 자신있게 되묻는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한국을 중국의 일부 지역으로 알고 있거나, 내가 한국인이니까 당연히 중국어 구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오! 너 한국인이었어? 우리 회사에도 한국인이 있어. Mr. Ram을 내가 소개해줄게.'라고 당당히 말하면 '아니야.. 그 사람은 한국인이 아닐 거 같은데..'라고 답하고 역시나 며칠 뒤에 '아, 내가 물어보니까 한국인이 아니라 베트남인이었어, 미안해.'라고 멋쩍어한다거나, 홍보가 되지 않은 한국에 대한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아이 학교에 갔다가 이 지도가 벽에 걸려있는 걸 봤다. 별별 작은 나라도 다 표시가 되어있는데 한국만 없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북한도 없는 걸보니 실수라고 치자. 이걸 만든 사람이 잠시 하필이면 아시아쪽에서 조는 바람에 코리아만 빼먹었거나 아니면 코리아를 너무너무너무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일부러 뺐거나.
자세히보니 배경으로 쓰인 지도에는 Sea of Japan도 있다. 저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다. 나라의 실력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힘이 있어서 생긴 일이다.
내 나라가 힘이 없어서, 또는 내 영어가 모자라서, 나는 Sea of Japan이 틀렸다거나 East Sea나 Donghae가 맞다거나 병기해야 한다거나 등등은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귀찮아서,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니까, 아무도 관심 없을 거니까 아무 말 하지 않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지나가던 선생님을 붙들고 섰다.
"이 지도에 한국이 없네? 나는 한국에서 왔고 내 아이는 영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그래도 한국인인데. 그 한국인 학생이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여기에 한국이 없어."
물론 그 선생님이 이 지도를 만든 사람도, 벽에 건 사람도, 이 학교 지도 관련 홍보부 관련 업무를 보는 사람도, 심지어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하필이면 그때 내 앞을 지나가던 학교 교직원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무심히, 그러냐는 투로 저 지도가 언제부터 걸려있었더라..라고 말하면서 혹시 오늘 처음 본 내가 여기서 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가를 계산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렇잖아. 괜히 이것 때문에 앞으로 여기 다니는 학생들이 혹시 한국이 나라가 아니라 어느 동네 이름이라도 되는 줄 알면 어떡해. (학교의 위상을 걱정하는 척 한다) 또는 한국인 유학생들도 있을 텐데 그걸로 괜히 아이 자존심이 다칠 수도 있고. 안 그래?'
웃으면서 이야기 한다. 절대 화내면 안 된다. 솔직히 화가 나지도 않는다. 이런 걸로 화 내기 시작하면 한국사람들 제명에 못 산다.
우리말에서 '우리나라'가 맞고 '저희나라'가 틀린 이유는 모든 나라는 모두 동등하기 때문에 한쪽을 낮추거나 높여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다. 그래서 British Museum도 위대하신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그냥 영국박물관이다.
선생님은 내가 그랬듯이 하하호호 웃으며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갔고 나는 당장 지도가 고쳐지는 것은 볼 수 없었다.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 영국은 병원에 가기 위해 예약하는 것도 몇 주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다만 그 상황에서 내 아이가 옆에 있었다. 할머니가 사는 곳은 여기라고 엄마가 손가락으로 늘 가리키는 그곳이 없어진 지도를 보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에 대해 지나치지 않고 이야기 할 줄 아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내 아이가 옆에 있었다. 비록 영어보다 한국어를 훨씬 더 잘하는 엄마지만, 한국어보다 영어를 훨씬 더 잘하는 내 아이가 그걸 봤다.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