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손님들이 사장님한테 종종 묻는 질문에는 "둘이 자매예요?"가 있다. 이 질문의 답은 일요일엔 '네'이고 토요일엔 '아니오'이다. 일요일에 카페에서 사장님을 도와주는 여성은 사장님의 친언니가 맞고, 토요일에 사장님을 도와주는 여성은 나니까. 둘이 전혀 닮지도 않았는데 자매냐고 묻는 이유는 아마도 너무 외진 곳에 카페가 있고 (차 없이는 결코 오는 길이 쉽지가 않다. 오로지 친족만이 가능할 것 같은 오라Aura랄까) 알바인 내가 아무리 흐린 눈으로 봐도 알바'생'처럼 보이지는 않기 때문일 터.
- 친구예요.
우리 사장님은 손님들의 질문에 '나는 사장이고 얘는 알바다.", "우린 자매가 아니고 쟤는 알바이다." 따위의 후진 팩폭 따위는 하지 않는다. 자매냐는 질문에 '친구'라는 다정한 말로 대답을 갈음한다. 살면서 사장이라는 타이틀은 한번도 달아보지는 못했지만 사장친구라는 타이틀을 달아보게 된 것이다. 친구 가게는 무조건 잘 되어야 되니까 장사를 할 때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더 힘이 나는 것도 같다. 이 카페의 건물주는 한술 더 뜬다. 딸(사장님)에게도 주지 않는 홈메이드 반찬을 알바를 갈 때마다 챙겨주신다. 귀여운 투정으로 '엄마, 나는 왜 안 줘?'라는 말에 건물주님은 '넌 늬집 가서 사먹어.' 하신다. 그러면 나도 쑥스레 웃으며 '에이, 평소에 엄청나게 챙기시면서 괜히 그러신다,' 하고 만다. 사람 구하기 힘든 이 인구소멸지역 시골에서 따님의 사업을 돕는 알바를 챙기는 일이 사장인 따님을 챙기는 일임을 모를 리 있을까.
오랜 친구들은 알바하면서 배워서 너도 하나 차리라고 하지만 사업을 할 생각은 없다. AI와 관련된 병원 연구원도 해봤고 외국에서 한국어 선생님도 해봤고 한국에선 영어 선생님도 해보았다. 시골에 와서는 이렇게 카페 알바까지 해보고 있는데도 내가 사장이 되는 미래는 머릿속에 없다. 아마도 내가 비교적 자유로움 때문에 어릴 때부터 프리랜서를 꿈꾸었고 9-5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카페든 뭐든 여는 순간 거기에 올인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사장님 소리 보다는 사장님 친구 소리가 훨씬 듣기 좋은 지금인 것이다.
즐겨보던 미드 중에 '앨리 맥빌(Ally McBeal (TV Series 1997–2002))'이 있다. 한 에피소드에 이런 게 있다. 한 남자가 심장병에 걸렸다. 그 남자의 친구는 자기 심장을 이식해주겠다고 나선다. 심장은 두 개가 아니니까 자기가 죽게 되는 데도 말이다. 한술 더 떠서 병에 걸린 그 친구도 이 수술에 찬성을 해서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병원의 반대로 법정싸움으로 이어진다. (앨리 맥빌은 법정 드라마이다) 심장병에 걸린 남자는 굉장히 큰 회사의 회장이고 심장을 주겠다는 친구는 그 회사의 경비이다. 이들이 처음 만나게 된 건 회장이 한 거지에게 적선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고 나중엔 그 회사의 경비 자리까지 알아봐 줬던 것. 애초에 이 친구는 직장을 알아봐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다만 이렇게 큰 도움을 준 친구에게 자기 심장을 꼭 줘야겠다고 자긴 가족도 없지만 회장은 아내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으니 살면서 한 일이 없는 내가 처음으로 잘해보려는 일이 이 친구에게 심장을 주는 일인데 왜 못하게 하냐고 호소하지만 결국 심장 이식을 할 수 없도록 법적 결론이 난다.
재판이 끝난 후 병에 걸린 친구보다는 심장을 주지 못한 친구가 훨씬 더 큰 실망을 하는데 병에 걸린 회장은 편안하게 웃으며 그 친구에게 고백을 한다. 재판 시작할 때부터 당연히 안 될 것을 알고 있었다고. 그런데도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회장은 말한다.
"나는 이제 이 재판을 통해 무슨 회사의 회장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의 친구라고 기억될 거야. WOW!"
카페 알바 하나 하면서 무슨 회장님 심장병 나오는 미국 법정 드라마까지 언급하나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런 반응은 스레드에서나 하는 것 같던데. 훗. 태어나서 자란 서울에서도, 직장동료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던 여의도에서도, 아이를 낳고 키우던 영국에서도, 완전히 다른 환경의 인구소멸위험지역 마당있는 시골 동리에서도. 모든 곳에서 좋은 친구가 되어준 내 친구 여러분, 참말로 고맙다.
*'참말로'는 '사실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과연'이라는 뜻의 표준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