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카페에는 키오스크가 없다. 일단 키오스크를 설치할 자리가 없다. 사장님과 알바 모두 160cm 안팎의 크지 않은 체구인데도 둘이 매일 서로 몸을 콩콩 부딪혀가며 일하는 좁은 부엌인지라 키오스크는 커녕 쟁반을 반납할 공간도 없다. 그러다보니 다 마신 음료잔이 가득한 쟁반을 들고 주문을 했던 작은 부엌으로 다시 돌아와서 "잘 마셨습니다"와 같은 예쁜 말을 해주는 손님들을 다시 볼 수도 있다. 덕분에 "맛이 어떠셨어요" "왜 다 남기셨어요" "입맛에 맞으셨어요?"와 같은 대화를 더 해볼 수도 있다. 물론 사장님이 자리가 없어서 키오스크를 들이지 않은 건 아닐 터. 요즘엔 작은 태블릿을 주문하는 곳에 올려두고 메뉴를 고르고 계산까지 할 수 있으니까.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나 보던 사람만한 크기의 키오스크 기계를 들일 것도 아니면서 좁기는 뭐. 엄밀히 말하면 내가 주문을 받고 있는 작은 태블릿을 내 쪽이 아니라 손님쪽으로 돌려놓으면 그게 바로 키오스크 아닌가?
어쩌면 사장님은 손님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그동안 내가 들은 사장님의 다정한 말들은 '이 근처에 놀러오셨어요?' '이 동네 분이세요?' '아기가 많이 컸네요' 등등이 있다. 이런 말들은 키오스크로만 주문하는 카페에서는 들어볼 수 없을 테니까.
알바 처지에서는 분명히 집중해서 듣는다고 들었어도 주문을 잘못 받을 때도 종종 있다. 주문을 받을 땐 아아 다섯 잔이라고 들었는데 나중에 쟁반이 나가고 나서야 아뇨 하나는 따뜻한 거예요 한다거나 하는 일들. 너 뭐 먹을래, 하면서 손님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주문을 받는 사람인 나에게는 말을 하지 않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수준으로 친한 자기네들끼리만 알고 있다가 결국 주문을 누락한다거나 하는 일들. 아마도 그럴 때 키오스크가 빛을 발할 거다. 잘못된 주문도 직접 하는 시스템! 알바 입장에선 훌륭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나는 키오스크가 우리 카페에 도입되면 '사람들과 말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알바 생활이 한층 심심해지긴 할 거다. 게다가 우리 카페는 최첨단(?) 키오스크와는 거리가 먼 '천천히 흘러가는 카페'이니까. 천천히 집을 지었고(한옥) 천천히 주문을 받고(키오스크가 없으니까) 사장님이 천천히 준비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음료가 천천히 나가고(지역 특산물로 만드는 메뉴들 항시 대기), 음료와 간식을 천천히 즐기다가(1인 1메뉴 시스템도 없다) 천천히 나가도 되는 그런 여유가 있는 곳. 아무래도 키오스크는 어울리지 않겠다.
알바인 내가 주문을 확인 또 확인하는 이유는 1인 1메뉴 정책 때문이 아니다. 그런 정책은 여기엔 없다. 사람은 셋인데 음료를 두 잔 시킨 게 맞는 건지, 주문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묻고 또 묻는 것일뿐. 쫄지 마세요.
키오스크 얘기가 나온 김에 어르신들에게도 한 마디.
키오스크가 두려운 만큼 경험이 적고 나이가 어린 직원들은 어르신들이 두려울 겁니다.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를 처음 본 것처럼 그들도 화내고 윽박지르고 짜증이 많은 어르신을 대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서로 배려합시다.
어딜 가나 저처럼 경험이 아주 많고 나이가 많은 직원이 눈 부릅뜨고 일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