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삶과 카페 알바의 삶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매일 줄을 서서 들어오는 손님들은 어렵게 섭외해 스튜디오 모신 게스트 같고 갑자기 터지는 여러 이벤트들은 마치 생방송 같다. 이미 주문을 마치고 트레이를 들고 나갔는데, 갑자기 부엌으로 헐레벌떡 다시 들어오는 손님들은 열에 아홉은 고양이가 할퀴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만지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귀엽긴 하니까- 만져서 할큄 이벤트가 종종 일어난다. 간호사 경력이 있는 사장님은 그냥 연고로 그치지 않고 다친 정도에 따라 먹는 약을 챙겨줄 때도 있다는 사실, 몰래 알려드립니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해 놓고는 먹는 약도 달라고 떼 쓰는 진상은 되지 맙시다.)
또 조심스럽게 부엌에 들어와서 물을 달라고 하는 손님들의 1/3은 사람이 먹을 물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일하는 카페는 반려동물과 함께 올 수 있는 야외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손님들도 종종 맞이하는데 그러면 그렇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주둥이가 긴 물컵이 아닌 동물이 먹기 쉽게 되어 있는 컵을 줄 수도 있으니까. 언제부턴가는 아예 "사람이 마실 물인가요?"라고 묻기도 하는데 그러면 또 그 중에 반은 "네, 약을 먹어야 해서요."라고 대답한다. 물을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용기 때문에 묻는 것임을 알아주시길.
화장실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시는 분들에게도 나는 반문을 할 때가 많다. 남자 화장실이요? 여자 화장실이요? 남자가 물었다고 해서 남자 화장실이 어디있냐고 묻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여자 어린이를 데리고 온 아빠일 수도 있으니까. 부엌이 덜 바쁘고 내가 프렌들리 모드일 때는 아예 손님들이 묻기도 전에 '참고로 남자 화장실은 저기 여자 화장실은 저쪽에 있습니다~'라고 미리 말할 때도 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조마조마하게 하는 손님들은 나를 사장님으로 착각하고 여러 질문을 하는 분들이다. 1인 사업장에 1인 알바를 3시간만 쓰는 곳이다보니 사장님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바쁘신데 그럴 때마다 카운터에서 혼자 서 있는 나를 사장님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다. 사장님 여긴 공사를 어떻게 한 거예요? 사장님 제가 누군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한번은 '사장님 간호사이시라면서요?'라는 질문에 '제가 백의의 천사처럼 순하게 보이나요?! 와아아 기분 좋아!!'라고 오바육바를 해서 손님을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
가장 최근에 조마조마하게 했던 손님이라면 두 분이 기억에 남는데 먼저 아기 이유식을 카페 전자레인지로 데우려는 초보아빠였다. 우리는 대형 카페가 아니라서 빵을 포장할 수 있는 스테이션이 따로 있거나 빵을 스스로 데워먹게끔 하는 전자레인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분은 카페 부엌으로 일부러 들어와서 가게 베이크 전용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셔야 했는데 사장님도 나도 둘 다 자식을 키우는 유초중등 엄마인지라 그런 건 이해를 하지만 이유식을 데우기 위해 전자레인지 내부 청소도 해줘야했고 또 그날 처음 밖에서 이유식을 데우셨던 것인지 온도가 계속 안 맞아 체감 20분 정도 전자파를 맞아가며 부엌에 머무셨는데 내가 대신 해주고 싶었을 정도라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또 한분은 나이가 있으신 미세스였는데 가게 마당에 있는 꽃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꽃씨를 달라고 하신 분이었다. 여기에도 나는 반문을 했다. '그게 꽃씨가 있어요? 어디요?' 우리집에는 엄마가 사는 서울 아파트 정원에서 가져온 분꽃이 있는데 이 분꽃은 한번 뿌리를 내리면 씨를 100개씩 주는 경향이 있어서 그 꽃도 그렇게 씨앗이 달려 있는 건지 궁금했다. 미세스 손님은 내가 이 꽃에 대한 지적재산권이 없어 보임을 감지하고는 그냥 자리를 떠났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 꽃 앞에서 주섬주섬 움직이셔서 나를 불안하게 했다. 꽃을 뭉텅 뜯어서 가져가실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다행히 꽃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셨지만 꽃을 뜯어가지는 않으셨다.
이러한 조마조마함은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생방송을 두근대며 해내던 제작진의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 걸까.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신나게 여겨지는 일이 더 잦다. 누가 크게 다치는 일만 아니면 뭐가 그리 스트레스이겠는가. 여러분, 고양이 만지지 마세요. 걔 할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