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와는 다르다는 이질감
최근에 <어쩌다 강남역 분식집>이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일부러 그 책을 찾아서 빌린 건 아니고 그냥 도서관 책장을 훑어보다가 내 고향인 '강남역'이라는 말에 꽂혀서 읽게 된 것. 강남역에서 떡볶이 좀 먹었다 하는 건 바로 나인데! 하면서 관심있게 읽었다. 알고보니 강남역에서 떡볶이를 먹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출신의 경단녀인 작가가 어쩌다가 강남역의 분식집에서 알바를 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글로 엮은 책이었다.
어쩌다가 시골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쓴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떡볶이 집의 작가님처럼 알바하면서 일어나는 인생의 단짠같은 건 글에 잘 녹여내지 못하겠다. 그런 면에서는 이질감을 느꼈다. 아마도 거기는 세상 복잡한 강남역이고 내가 있는 곳은 주말에만 여는 세상 조용한 시골길 끝의 한옥카페이기 때문일지도. 나는 대기업 출신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고 (웬만한 현직 방송작가는 거의 다 프리랜서이다) 경단녀로 시간을 보내다가 카페에서 알바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 쪽으로는 공감을 하지 못했지만 그저 강남역 이야기를 시끌시끌하게 다시 눈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으로도 좋았다. 맞다, 그래. 사람이 워낙 많으니 진짜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지.
내가 일하는 카페에서 이상한 손님이란 강남역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터. 팔기 위해 진열되어 있는 빵을 계산도 하기 전에 덥석 맛을 보겠다며 먹어보는 사람이라든가, 카페에 사는 고양이 간식을 잔뜩 가져와서 선물로 주고는 그게 마치 커피값인냥(냥?) 커피값은 내지 않고 간다거나, 이 동네에서 자기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를 역사해설가처럼 줄줄 읊으시다가 갑자기 카페를 잘 차렸다고 사장님에게 폭풍 칭찬을 하고 훌연히 떠나는 분이라든가, 스님 복장으로 나타나 (진짜 스님이긴 하겠지?) 공양을 하라고 눈치를 주고는 축지법으로 나가시는 뉴발란스님이라든가.. 이런 손님들을 보고도 별로 큰 감흥이 없는 것은 아마도 내가 30년 이상 강남역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일까?
강남역 얘기는 마무리하고 이제 떡볶이 얘기를 해보자. 여전히 엄마집이 있는 내 고향 서초동에는 '삼호아파트', '삼익아파트', '진흥아파트'에 살던 아이들이 다니던 '삼익 떡볶이'라는 떡볶이 가게가 있었다. 진짜 상호는 다른 거였을 텐데 우리한테는 그냥 삼익 떡볶이로 불렸다. 삼호아파트에 삼호상가, 삼익아파트에 삼익상가, 진흥아파트에 진흥상가가 있었는데 그 중 삼익상가의 지하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분식집이 있었던 것이다. 14년 차 살림꾼의 기억으로 톺아보면 90년대의 그 떡볶이맛이란 사실 엄마가 주지 않는 설탕의 맛이었는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현금을 들고 줄을 서서 떡볶이와 쫄면을 사먹었다. 슬프게도 삼호상가와 진흥상가는 상가와 같은 이름의 아파트가 재건축을 했어도 여전히 있는데 그 떡볶이를 팔던 삼익상가만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떡볶이를 함께 먹으며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던 친구들도 유학과 결혼 등으로 다 흩어졌다. 그렇게 다시는 맛보지 못할 기억 속의 맛으로 남아버렸다. 학원 시간이 다가오는데 대기줄이 줄어들지 않을 때의 긴박함도 어제 같이 생생하고, 편을 갈라 다른 테이블에 앉고 니 친구 내 친구하며 툴툴거리던 여성 청소년 시절의 예민함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같은데 말이다.
내 아이는 고학년인 지금도 학교 앞 떡볶이를 먹지 않는데 무엇으로 지금 이 시간을 기억할지 궁금하다. (마라탕도 먹지 않는다. 마라탕을 먹기 때문에 떡볶이를 먹지 않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 어쩌면 엄마가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세 시간만 일하는 시골 카페의 맛으로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마다 사장님이 짤주머니로 직접 짜서 만드는 앙금과자의 고소함과 쌀로 만든 가래떡을 달콤한 조청에 찍어먹는 맛이라든가. 건물주님이 챙겨주시는 상추의 맛이려나. (사진) 여긴 재건축할 일도 없으니까 오래오래 그렇게 기억 속에 남아있을 지도.
경력으로만 보면 카페를 차려도 두 번을 차렸을 텐데 분식집에서, 그리고 시골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을 칭찬하고 대기업과 방송국에서 일하던 끼와 깡으로 알바도 꾸준히 해내는 우리들을 기특히 여긴다. 나는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