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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뭘 시킬까 고민하신다면

by Aeon Park

브런치는 작가에게 공지를 하지 않고 메인에 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최근 글이 조회수가 1000을 넘었을 때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땐 수만회 조회에 달았던 글도 있었으니까. 아마도 수해 관련 글이 어디 노출되어서 많이 읽힌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 조회수에 연연하기엔 너무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요즘의 나. 원래 나는 토요일 알바이지만 지난 주엔 일요일에도 나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틀 연속 카페 일을 도와주었다. 집은 좀 복구가 되었냐는 사람들의 질문에는 아니라는 말 밖엔.


지난 번에 카페 건물주님께서는 수해를 입은 나에게 노각과 가지를 챙겨주셨다. 노각은 이때 처음 만져보고 처음 먹어보았는데 오이와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다음에 마트에서 보이면 구입할 용기도 생겼다. 늙어서 빛이 누렇게 된 오이를 뜻하는 노:각. 늙을 노를 쓰니 순우리말로는 늙은 오이라고 하면 될까. 껍질을 벗기고 씨를 발라놓으면 겉모습이 참외와 다를 바 없다.


이번 주는 언제 비가 그렇게 왔나 싶게 더운 날이 계속 되었고 카페에 손님들도 많았다. 보통 대추차는 커피를 드시지 않는 어르신들이 주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날은 대추차를 주문하는 오후 손님들이 많았다. 내 짐작은 아침에 커피를 이미 마셔서 더 마시긴 부담스러울 때 시키기 좋은 메뉴가 아닐까 싶다. 나도 이날은 아이스 대추차를 스태프드링크(staff drink? shift drink?)로 마셨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인구소멸지역으로 이사오고 나선 영어를 쓸 일이 없었는데 이날은 외국인 손님도 여럿 왔다. 아마도 대학교 MT를 온 모양? 대화를 해보니 영어권은 아니었지만 나도 아니잖아? 훗. 이들도 어디서 커피를 마시고 왔는지 캐모마일 차가 있냐고 물어봤지만 아쉽게도 카페엔 캐모마일 차가 없다. 그리하여 대추차를 주문한 이 손님들이 나중에 반납한 트레이를 보니 거의 다 남김. 대추와 잣을 동동 띄운 대추차가 입맛에 맞지 않았나 보다. ㅠ 사장님은 나에게 손님이 무엇을 얼마나 남겼는지 확인하라고 한 적이 전혀 없지만 나 혼자 확인하고 싶었다. 보통 어르신들은 대추차를 시키고, 다 마시고 나서 다시 뜨거운 물도 부어달라고 한다. 또 커피를 어디선가 마시고 온 젊은이들은 시골 카페에 온 김에 대추차를 도전하고 싶은 얼굴이긴 한데 뜨거운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차가운 대추차도 가능하다고 설명을 한다.

여름에 남자끼리 카페를 방문을 했다면 보통은 다 아아. 테토남들이 시키는 아아들 사이에서 간혹 한 명이 "니들 다 아아야? 그럼 난 다른 거 먹을래."하며 미숫가루를 주문하는 일도 잦은데 이 미숫가루는 한두입만 마시고 그대로 반납되는 일이 더 많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마 진득한 텍스처에 벌컥벌컥이 되지 않아서 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그래서 트레이가 나갈 때 꼭 잘 저어서 드시라고 말씀을 드리지만...


제목으로 돌아가서, 카페에서 뭘 시킬까 고민이 된다면 일단은 그 카페의 시그니처를 드셔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내가 일하는 카페의 시그니처는 팥이 들어간 라떼인데 이름 때문에 오곡라떼마냥 커피가 안 들어가는 거라 착각하기 쉽지만 이것도 엄연히 커피이다. 샷이 들어간 팥우유빙수 맛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메뉴를 개발하고 론칭(?)하는 가게 사장님들은 참 대단하다. 얼마나 많은 반복과 실패를 했을까 싶고. 내가 제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뿐이다가 최근에 물 대신 우유를 넣으면 아이스 라떼가 된다는 것까지 배운 상태. 대추차의 고명을 올리고 에이드의 고명을 올리는 건 할 수 있어도 음료의 정확한 비율까지는 모른다. 이런 나라도 카페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번 주말엔 산사태로 파괴된 우리집을 고치기로 했다. 사실 집 자체는 괜찮은데 집을 받치고 있는 땅이 무너진 거라 지자체의 보상도 없다. 아니, 땅이 사라져서 집이 공중에 붕 떠 있는데, 그것도 산림청이 관리를 하지 않은 산사태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산림청도 군청도 조용하다. 보상은, 집이 파괴되어야 보상을 해준다고. 집을 너무 튼튼하게 지었나.. 집이 망가졌으면 아예 철거를 했을 텐데 멀쩡한 집 철거 비용이 공사 비용보다 더 들어가서 공사를 하는 상황. 굴착기도 불렀고, 레미콘 기사도 불렀지만 그래도 알바는 한다. 집에 내가 있다고 해서 공사가 더 빨라질 것도 아니고. 대추차에 고명이나 올리고 아아에 얼음이나 채우면서 머리를 식혀야지.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54184&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우리집 위쪽 산에도 늘 벌목을 해왔다. 이번 폭우로 나무토막들이 우리집 앞마당으로 물을 타고 흘러왔다. 우리집을 방문했던 산림청은 계곡에 사방댐을 건설하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이 기사를 보면 사방댐 건설도 대안이 될 수 없는 모양. 개인에게 댐을 건설하라니 처음엔 뭔 소리인가 했는데 춘천댐, 팔당댐 같은 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꽃이 피던 앞마당에 수많은 돌덩이와 나무토막이 물을 타고 나타났다


어쨌든 이번 공사도 아아만들기의 여러 단계처럼 수월하게 척척 탁탁 조르륵 툭 쨘 벌컥벌컥 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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