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하는 카페는 괜찮습니다.
"수해로 마을이 초토화가 되었다"에서 '초토'는 한자 그을릴 초, 흙 토를 써서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어색할 수 있다는 내용의 원고는 여러 번 썼어도 실제로 수해를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도시의 아파트에 살 때 큰비로 주차장에 물이 차 침수차량이 된 것은 이번 피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7월 19일 토요일. 아이가 세종시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하게 되어서 우리 가족은 집을 떠나 있었다. 이전글 중에 '여러저러 기승전세종시'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우리의 계획을 짐작할 수 있을 터.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이었다. 그때 만약 집에 있었다면 새벽에 무섭게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을 거고, 나와는 성격이 다른 아이 아빠는 분명히 주택 옆으로 흐르는 물길을 잡아보겠다고 혼자 밖으로 나갔을 거고 아마 물힘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게다가 수영도 못 한다.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재산 피해를 입었어도 우리는 목숨을 건졌다.
당일치기는 무리일 것 같아 호텔에서 자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카페 사장님께는 하루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해두었고 편하게 시작한 여행 겸 행사 참가 일정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새벽 5시쯤 나를 깨웠다.
- 일어나봐, 일어나봐. 큰일난 거 같아. 지금 집에 가야 돼.
주택에 설치되어있는 CCTV를 폰을 통해 보니 앞마당 뒷마당 옆마당 할 거 없이 폭포가 되어 물이 콸콸콸 흐르고 있었다. 계곡 옆에 지은 집이긴 해도 워낙 물이 없는 계곡이라 작년처럼 폭우가 쏟아져야만 적당히 넘치지 않게 흐른다 싶은 곳인데 물살이 세고 빨라 땅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자는 아이를 깨워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카페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사장님은 이곳에 살진 않지만 대신 이곳에 있는 카페가 사장님 부모님이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사장님에게 현지 상황을 알려줬더니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곤히 자는데 괜히 깨웠나 1초 생각했지만 그래도 알고 있는 게 낫다고 10초 생각했다.
달리고 달려서 마을에 도착하자 경찰과 소방차가 즐비했고 알고보니 실종자와 사망자가 나온 큰 일이 터진 것이었다. 그냥 물만 흐르고 재산 피해가 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모든 길을 막아놓고 있었지만 우리는 현지인답게 여기저기 길을 알고 있어서 겨우 집 가까이까지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차고까지 갈 수는 없어서 마을회관에 차를 버리고 여행짐도 그대로 두고 몸만 갖고 물이 흐르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도앱에선 걸어서 20분 거리라고 하지만 평지가 아니라 산을 오르는 거고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산 속에 지은 우리집으로 가는 이 길은 항상 차로만 다니던 길인데 이렇게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가는 길 곳곳이 끊겨서 마을 사람들이 물 위로 사다리를 가로로 놓아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다 젖은 채로 겨우겨우 집에 도착하자 먼저 진흙 범벅이 된 마당 개를 발견하였다. 시골에서 키우는 개라 마당에 묶어 놓고 키우는데 물이 너무 불어서 진흙을 맞고 있었던 거였다. 10살 아이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에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도 길고양이 바이러스로 잃은 상태였기에... 그 고양이들을 묻은 땅도 토사가 유실되어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는 자기도 홀딱 젖었으면서 강아지 목욕을 시작했고 우리 부부는 집쪽으로 흐르고 있는 계곡의 물길을 잡아야 했다. 위에서 산사태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부엌 창문으로 물과 돌과 진흙이 들이칠 뻔했으나 다행히 창문을 열지 않으면 괜찮은 상태. 창문이 산에서 굴러온 돌에 깨지지 않은 것도 다행. 흙과 돌 때문에 창문이 열리지 않는 상태. 강아지 목욕을 마친 아이가 작년 시어머니 장례식 때 썼던 일회용 숟가락을 들고 와서 창틀에 낀 진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물길을 따라서 밑에서부터 내려온 동네 아저씨들이 삽을 들고 나타났다. 원래 거기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지만 물살로 인해 물길이 생긴 터. 아저씨들은 물길을 잡아보려고 올라왔다며 온갖 돌과 나뭇가지, 위에서 내려온 쓰레기 등으로 막혀 있는 흄관을 남편과 함께 치우기 시작했다. 몇 시간 뒤 물길이 다시 제자리를 잡았고 흄관으로 물이 흐르기 시작했으며 부엌 창문을 치던 물 수위는 사라지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20일 초복, 일요일 당일에 있었던 일. 물 때문에 깎인 땅 위로 별채로 쓰이는 집이 여전히 매달려 있는 형국이고 건물 기울기를 재보니 약간 기울어있다고 했다. 목요일에 카페 사장님에게 다시 연락을 해서 하루 또 빠져야 한다고 말을 했다. 다행히 카페가 있는 동네는 전기와 물은 안 나와도 극심한 피해는 없다고 답이 왔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어서 아는 동네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고 모두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여전히 뉴스에서는 실종자를 찾고 있는데 꼭 찾기를 온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이번 주는 폭염으로 낮에는 바깥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미 며칠 동안 땡볕에서 일을 하는 바람에 피부가 붉게 벗겨지는 중. 이럴 땐 본업인 원고를 쓰고 기록할 수 있는 현재를 기록하는 중. 당분간 카페 알바 관련 연재는 수해와 관련된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