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미쳤어요'의 요즘 말
요즘 온라인에서는 '-슨' 체가 유행이다. 별 의미는 없고 그냥 라떼에 '했어요'가 '했어연'이 되고 '하이'가 '하이루'가 된 것 같이 '-음'을 '-슨'으로 쓰는 것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사장님이 '미쳤슨'이다. 내가 작가라서 그럴까, 가게와 관련해 sns에 짧은 문장을 올리기 전에 가끔 사장님은 내게 문장을 미리 보여주는데 나는 이렇게 올리면 안 된다고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열심히 일한 사장님은 아이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가려는데 뭐가 그렇게 죄송한지 가게 휴무 알림을 올리면서도 끝에 '죄송합니다'를 써 놨다. 나는 이 문장을 빼라고 조언했다. 사장님의 손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은 너무 잘 알지만 알바인 내가 보기엔 이게 그리 죄송할 일인가 싶은 거다. 오히려 요즘 같은 세상엔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가 화근이 되어 뭐 죄송한 일을 했나보다 괜스레 착각하기 쉬우니까.
또 한번은 음료를 주문해 가져가던 손님이 발을 헛디뎌 음료를 모두 바닥에 쏟는 일이 있었다. 이 손님이 부엌에 다시 와서 음료를 재주문했다면 아마 나도, 사장님도 그냥 무료로 음료를 제공했을 거다. 그런데 그분은 그냥 일행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고 추가 음료가 필요하지 않은가보다 생각을 하기 시작한 알바(나)와 달리 사장님은 그분의 주문을 확인하고 똑같은 음료를 다시 만들어서 갖다주었다.
- 사장님, 재료값 올랐다면서요.
- 에이, 그래도요.
나라면 내 휴가가 죄송하지 않으니까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거고, 나라면 음료를 다시 달라고 했다면 돈을 받지 않고 줄 순 있었겠지만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음료를 제조했을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사장님이 아닌 거였슨. 그래서 내가 큰 가르침을 배우려고 여기에 있는 거였슨. 보통 '사장님이 미쳤어요'는 가게의 어떠한 이벤트를 열 때 하는 말인데 우리 시골 카페는 이러한 순둥순둥 사장님의 존재가 그저 빛, 그것이 바로 이벤트인 것 같다. 사장님이 이런 좋은 분이시라 나도 가게에 무엇을 드리는 게 아깝지가 않다. 어떤 알바가 자기가 일주일에 3시간 밖에 일하지 않는 곳에 4도어 양문형 냉장고를 보낼까. 바로 나. 시골 우리집에는 어쩌다보니 여러 종류의 냉장고가 있었는데 사실 한두 개에 음식을 가득가득 보관한다면 부엌에는 한 대만 있어도 괜찮았다. 그래서 카페 음료를 만드는 여러 재료 때문에 냉장고 부족을 겪던 사장님에게 쓰고 있던 냉장고를 보내기로 했다.
그날 나는 힘이 센 사촌오빠와 남동생을 불러 집에서 카페로 냉장고를 운반하였고 우리집에서 물이나 보관하던 널널한 냉장고는 이제 카페에서 재료들을 가득 품고 있게 되었다. 이렇게 뿌듯할 수가! 아파트가 아닌 시골 주택에서 다른 시골 주택으로, 덩치가 큰 가전제품을 사람의 힘으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이날 제대로 깨달은 건 안 비밀. 그건 아마도 사람의 힘이 아니라 사랑의 힘일 듯. 사랑해요 사장님. ㅋㅋㅋ 시골피플에게는 누구나 있다는 1톤 트럭이 없는 우리에게 트럭을 빌려주신 마을 이발소 사장님도 고맙습니다.
알바가 사장한테 냉장고를 준 게 의아할까 싶어 붙이는 뱀발(蛇足)
* 시골 주택인 우리집엔 차고에 하나, 부엌에 3개, 거실에 2개, 운동하는 방에 1개, 별채에 1개, 이렇게 8대의 냉장고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카페로 보냈고 다른 하나는 이장님 댁에 보냈다. 그렇게 짐을 줄이고 6대의 냉장고를 보유한 시골 아줌마가 되는가 싶었는데 남편 회사에 있는 냉장고 한 대가 집으로 오는 바람에 다시 7대가 되었다.... 가끔 도시의 아파트로 이사가는 상상을 해보는데 아니 냉장고 개수 어쩔.
** 마당이 넓은 시골 주택에 냉장고가 많은 것이 엄청 특이한 일인 것은 아니지만 보통 단독주택보다 많긴 많은 듯. 정리에 대한 연재를 해도 몇 달을 할 수 있을 듯. 냉장고 필요하다고 해주신 이장님과 사장님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