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시골 카페 알바가 있었슨 뭘 딱히 하진 않았슨
일단 오늘은 이 시리즈를 업데이트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sf9 메인 보컬 인성의 생일이므로 축하부터 하고 시작하고 싶다.
"짱 크고 귀여운 김인성 씨 생일 축하합니다! 이렇게 더운 날, 내 취미가 되어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의 목소리가 들어간 공연은 저의 굉장한 취미입니다,"
이렇듯 재채기와 덕질은 도무지 숨길 수도 참을 수도 없으니.. 내가 일하는 2평쯤 되는 시골 카페 부엌의 BGM은 언제나 케이팝인 것이다. 왜요, 시골 카페라고 해서 판소리라도 틀 줄 알았수? 사실 사장님의 남편 분이 고른 90년대 발라드가 재생되고 있었던 이 카페. 나는 알바를 시작하자마자 귀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여 이 얘기부터 했다. 사장님, 당장 스피커를 끄셔야 합니다. 저를 믿으세요.
요즘 2평짜리 카페 부엌에서는 노동요로 케이팝이 재생되고 있으니 귀를 안심하고 입장하시면 됩니다, 고객님. 부엌으로 고객들이 들어온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내가 일하는 이 카페는 작은 부엌에 들어와서 주문을 따로 하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서 음료를 즐기는 동선이다. 제가 설거지 하면서 부엌에서 듣는 음악은 카페 안에서 재생되지 않으므로 이용에 참고바랍니다.
이렇게 덕질을 숨기지 못하는 알바 때문에 아이돌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사장님은 본의아니게 어느 아이돌이 무슨 공연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후기를 매번 들어주기까지 해야 하는데 감사할 따름이다. 여기가 도시였다면 사장님에게 무릎을 꿇어서라도 이곳에서 아이돌의 생일 카페(일명 '생카')를 주최해보고 싶기도 한데.. 벗뜨 여긴 대중교통이 아예 없는, 차가 없으면 방문하지도 못하는 인구소멸위험지역의 시골 카페이기 때문에 그 꿈을 고이 접어본다. 그냥 노동요로 같이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카페의 천국이라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30년을 살고 영국으로 이사가서 10년 살다가 왔으면 웬만하게 맛있다는, 예쁘다는, 유명하다는 곳은 다 다녀봤을 터. 00년대 젊은이들에게 휴식이 되어주었던 24시간 여는 압구정의 T카페도 기억에 남고, 1680년에 열어 지금까지도 운영하는 영국 Bath의 카페도 기억에 남지만 그럼에도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카페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내가 일하고 있는 이 카페일 거다. 현재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현재의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사람보기 힘든 이 시골에서 각지에서 오신 사람 구경도 시켜주는데 기억에 남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갑자기 카페 건물주님께서 나를 부른다. (사장님의 부모님) 손님이 없을 때 얼른 점심을 먹으라고 재촉하신다. 도시에선 이런 걸 '스태프밀(staff meal)'이라고 하던가. 텃밭에서 막 따온 오이를 넣은 비빔국수이다!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텃밭에서 가지 좀 가져가라 하신다. "아유, 괜찮아요, 지난 주에 주신 것도 아직 먹고 있어요. 아니, 말 나온 김에 그 가지로 양식 좀 만들어드릴까요? 여기서 만날 한식만 드시죠? 저희 집에 놀러오세요, 해외 생활 10년 짬바로 양식 대접해드릴게요." 그렇게 이날 나는 점심으로 비빔국수를 먹고, 저녁으로 감자수프와 샐러드, 가지 파스타를 대접해드렸다.
사장님이 말아주는 커피 마시면서 건물주님이 말아주는 국수나 먹고, 알바 인생이 이렇게 현란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다. '현란하다'의 사전적 뜻처럼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Staff의 바른 외래어표기법은 '스탭'이 아니라 '스태프'이다.
** Soup의 바른 외래어표기법은 '스프'가 아니라 '수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