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로 오토바일 타자' 음으로 읽어야 했슨
엊그제 MBC 예능 프로그램에 내가 일하는 카페가 나왔다. 카페 자체로 출연한 건 아니고 저속노화와 관련된 콘텐츠로 소개되었는데 우리 사장님이 잠깐 출연해서 물개박수를 치면서 시청했다. (이 브런치 연재 7화에 나왔던 홍보부장님도 출연했슨)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속노화를 하려면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 서울 근교에 마당이 있는 주택을 짓고 살면서 텃밭에서 나는 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눠 먹으며 살아라, 가 핵심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나로서는 반댈세! 하며 시청할 수밖에 없었다.
1. 마당이 있는 주택을 짓고 살만한 자본이 없다.
내 경우에는 시어머님이 소유하고 계셨던 시골 별장이었으니까 사는 거지, 실제로는 TV에 나오는 것처럼 서울 근교에 땅을 사고 내 입맛에 맞게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은행빚을 짊어진 월급쟁이 처지에 그렇게 하고 싶다고 꿈만 꿀 뿐. 사실 나는 평생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월급쟁이 처지를 운운하는 것도 웃기다. 더 처절하면 처절했지.
2. 텃밭을 가꾸는 것은 저속노화가 아니라 고속노화다.
텃밭을 가꾼다는 건 계절적으로 봄부터 가을 그 중에서도 특히 여름이 제철일 텐데 이때는 너무 더워서 야외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고속노화이다. 노화의 근원은 바로 자외선! 절대 나가지 말 것. 장마면 장마대로 마음고생, 가뭄이면 가뭄대로 몸고생.
3. 내가 사는 시골에는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 없다.
다른 시골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인구소멸위험지역에는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 없어서 다치기라도 하면 매우 큰일이다. 논밭일로 크고 작게 다치는 분들도 많으신데 응급실이 없으니 아이를 키우는 내 입장에서도 너무 살 떨리는 일이다. 저속노화를 실천하기 위해 텃밭이 있는 집으로 가시려거든 반드시 병원 위치와 가까운 응급실 위치를 파악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2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저속노화가 다 뻥이란 말이냐! 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게 아니라, 처음과 달리 왜 저속노화라는 것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텃밭에서 자라는 걸 따 먹으며 사는 것'이 되었느냐는 말이다. 내가 이해한 저속노화는 스트레스를 낮추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주중엔 도시에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주말에는 부모님이 사시는 텃밭이 있는 공간에서 대파를 키우며 대파치즈스콘을 만드는 우리 카페 사장님이 저속노화인 이유는 그것이 스트레스가 아니기 때문일 터. 그런 분과 함께 일하고 있으니 나도 알바를 하는 하루 3시간 만큼은 초저속노화임을 인정해야겠다. 나는 저속노화를 실천하려고 시골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스트레스가 아니기 때문에 사는 것이지.
실제로는 딱 한번밖에 못 뵈었지만 오랜 인친인 어떤 분이 최근에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다.
"한번 마음먹고 실행하기가 어려운 일이 많은데, 저는 작가님이 방송작가로, 엄마로, 또 카페 알바 등등으로 다방면에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러워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흐뭇해지는 댓글이었다. 그 분은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저는 브런치 작가이기도 한 걸요. 속력이 빠른 다른 SNS와 달리 여기에 느릿느릿 글을 쓰는 이유는 말씀하신대로 '실행하기 어려운 일'을 실행하는 모습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 일 거다. 실패하면 실패하는대로, 성공하면 성공하는대로, 실행하는 모습을. 오늘도 여러 맘카페에는 경력단절 이후에 이력서를 돌리고 있다는 글을 볼 수 있다. 아직 연락이 없다는 글도 있고 갑자기 연락이 와서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글도 보인다. 뭐든 실행을 해야 시작일 테니 시골 카페 알바로 저속노화를 실천하는 나처럼 여러분도 망설이는 일에 대해 느려도 실행하는 한 주가 되기를 기대한다.
* 저속노화는 영어로 Slow Aging인데 바른 외래어표기는 '슬로우 에이징'이 아닐 '슬로 에이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