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히 밝힐 수는 있겠다
내가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세 시간만 도와주고 있는 시골 카페는 사장님과 알바(나), 이렇게 둘만 일하는 사업장이다. 그러니까 사장님은 소상공인이라는 얘기다.
소상공인(小商工人) :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이하인 사업체를 경영하는 사업자.
이번 수해를 겪으면서 마을 친구이자 소상공인인 사람들을 보면서 일반 가정집을 운용하는 나와는 다른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소상히 기록해두고자 한다.
소상히(昭詳히) : 「부사」분명하고 자세하게.
이렇게까지 큰 피해는 처음이지만 나는 침수로 인한 재산피해가 처음은 아니다. 내가 예전에 30년 동안 살던 강남역 사거리는 여름에 비가 올 때마다 물에 잠기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때 나는 차를 높은 곳으로 옮기려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운전을 하다가 차 안 발 밑으로 물이 차는 경험도 했던 것이다. 다행히 딱 발까지만 침수되었지만 그래도 내 차는 침수 차량으로 분류되었다. 이밖에도 다니던 동네 백화점이 무너진 적도 있고 아빠의 출퇴근길이던 한강 다리가 무너진 적도 있고 등등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인 총체적 충격으로 치자면 이번 폭우로 인한 재산 피해는 저 뒤로 밀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시골 카페를 통해 사귄 여기 분들은 산전수전이었던 나와는 다르다. 이런 폭우가 처음이기도 하고 폭우로 인한 피해도 처음인 것이다. 친하게 지내는 전) 카페 단골 손님 현) 새 카페 사장님은 사업을 시작한 지 몇 주 되지 않았었는데 카페를 둘러 싸고 있던 2천평 땅에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다 진흙에 묻혀 죽고 말았고 정화조도 박살이 났고 뭐 피해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떤 로스팅집은 고가의 장비가 다 물에 젖어서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고 어떤 펜션집 사장님은 담배를 뻑뻑 피우시며 수십동의 숙소가 다 날아갔다고 한탄했다. 방송에 알려진 것 말고도 크고 작은 피해들을 피해자들의 입으로 직접, 간접적으로 매일 듣고 있다.
성북동에서 카페를 오래 하시다가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하고 지금은 시골로 와서 똑같은 이름의 카페를 운영 중이신 다른 사장님은 다행히 가게에는 피해가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말벌이 집으로 들어와 잡으려다가 쏘여서 병원에 며칠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시골 생활을 결정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이거였다. 병원. 다행히 이번 수해로 가족 중에 다친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이 동네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이 차로 50분이기 때문이다. 늘 뉴스에서 다루는 문제, 먼 거리의 응급실 문제.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더더욱. 산사태와 함께 흘러온 진흙에 젖은 바비큐(바베큐는 비표준어) 그릴을 남편이 끙끙대며 혼자 옮기다가 발톱이 빠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다친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
내가 일하는 카페는 금토일만 운영을 하는데 이번 폭우로 전기가 끊겨 냉장고 속 재료를 모두 버려야 했다. 이 정도로 끝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워낙 좋은 재료들을 쓰는 곳이라 이것도 재산 피해라면 재산 피해지만 워낙 피해가 막심한 분들이 많으니 축에 들지 못한다. (축 : 일정한 특성에 따라 나누어지는 부류) 이 와중에 우리집 앞 길이 복구되자마자 도시에 있는 맛집이라는 곳에서 음식을 사다가 방문해주신 사장님 마음이 참 고맙다.
가평군은 지난 20일 내린 집중호우에 대한 잠정 피해액을 342억원(공공시설 312억 원, 사유시설 30억 원)으로 집계했다. 이날 기준 사망자 7명, 실종자 1명 등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이재민은 66명이다.
가평군 관계자는 "현재로썬 이재민 지원이 우선이기 때문에 관광객 유치 홍보에 대해서는 시기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며 "소상공인들도 힘든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지속해서 모니터링 중이다"고 말했다. (인천일보 기사 중)
피해를 입은 지 2주일 차. 정말 급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전화, 이메일, 팩스도 다 보내놓은 상태에서 직접 찾아가서 어려움을 어필하는 것도 추천한다. 다만 이때 본인의 어려움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어려워야 하며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사진, 영상 따위를 담당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집의 Before/After 상태를 다 사진으로 파일링해서 가져갔는데 이것도 전봇대는 무너졌을지언정 그때는 집에 전기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겠다. 이럴 때마다 어르신들은 사진도 못 찍고 사진 인쇄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텐데 자료를 가져오라니 이게 맞나 싶었다.
새주소로 바꾼 지가 언젠데 왜인지 가는 데마다 길이름 주소가 아닌 번지수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도 아주 번거로웠다. 나중엔 하도 그러니까 어쩌고 저쩌고 다시 어쩌고 저쩌고 라는 번지수가 외워지지는 않고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러자 그쪽에서 알아서 주소 검색을 통해 번지수 주소를 적었다. 사고 당일에는 괜찮다가 물을 머금은 땅이 약해져서인지 1주일 뒤에 한전이고 KT고 전봇대가 다 넘어져 집에 되는 것이 없는데 길이름주소를 말하는 주민에게 옛날 번지수를 검색해서 알려달라는 것이 어찌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지.
이번 피해로 우리집을 방문했던 분들을 기억나는대로 나열하자면
- 안산 단원구 방역차량
- 군포 산본동 방역차량
- 가평군 방역팀 (일반 차량으로 방문)
- 지반 침하로 붕괴 위험이 있는 집 관련 공사 업자들 (사비로 진행)
- 폐기물 처리 하청업자들
- 산사태로 굴러온 돌과 나무, 진흙 등을 치우기 위한 굴착기 기사님 (사비)
- 산림청 관계자들
- 군청 산림과 관계자들 (산림청과는 별개)
- 한국전력공사
- KT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아침 10시에도 헬기는 바쁘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원래도 비행부대가 있는 지역이라 그랬지만 수해 이후 더 소리가 잦아졌다. 아직도 실종자를 찾고 있는 거겠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족을 잃어봤던 사람으로서 그 어떤 피해복구보다 시급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실종자 수색일 것이다. 꼭 찾기를 매일매일 기원한다. 그리고 이 지역 소상공인들 그러니까 내 동네 친구들을 위해서도 여행을 취소하지 말아주시기를 바란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벌써부터 여기저기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땅에서 자라는 것들도 있고 꽃집에서 사와서 동네 여기저기에 다시 심어놓은 것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흙을 털어내고 샤워를 마친 나무들도 다시 광합성을 시작했고 산에서 굴러온 돌로 가득하던 우리 마당도 갑자기 파가 솟아나왔다. 내가 작년에 심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파가 올라오고 있었다...! 친정 엄마가 준 분꽃 씨앗을 시골로 이사와서 마당 여기저기 심어놨었는데 그 꽃들도 이제 보여줄 참이다.
다음 연재부터는 다시 신 나는 카페 알바 이야기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전기도 들어오면 좋겠다. 인터넷도 되면 좋겠다. 친구들의 카페가 다시 열었으면 좋겠고 카페에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