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카페를 알기 전부터, 그러니까 개업 시작부터 카페와 함께 해 온 우유 아저씨가 있다. 여기는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우유의 선택지는 다양하지 않은데 카페 사장님은 '가'우유만 쓰기를 고집하기 때문에 동리(지방 행정 구역의 최소 구획인 동(洞)과 이(里)를 아울러 이르는 말)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우유 대리점의 이 아저씨의 존재가 소중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우유 아저씨를 볼 때마다 'Something's off...'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얼마 전에 배달을 와야 하는 아저씨가 오지 않는 일까지 발생하고야 말았다.
- 사장님이 마음을 고쳐먹고 '나' 우유로 갈아탄다
- 사장님이 마음을 고쳐먹고 아저씨에게 큰 소리로 컴플레인을 한다
- 사장님이 마음을 고쳐먹고 '가' 우유 본사에 대리점을 고발(?)한다
여러가지 대책을 다다 내놓는 알바에게 사장님은 '그래서 그냥 뭐라고 한 소리 했어요..'하고 만다. 한 소리요? 두 소리 세 소리 천만 소리 했어야 한다고 하는 나는 어쩌면 그래서 사장님이 되지 못할 거다. 굳이 좋게 생각하자면
- 어쩌면 가족이 아플 수도 있으니까
- 어쩌면 그날 정말 전화기를 잃어버린 걸지도 모르니까
- 어쩌면 그날 말 못할 사정으로 오지 못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굳이 또 나쁘게 생각하자면
- 어쩌면 그날 도박을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을 테니까
- 어쩌면 전날 심한 음주를 하고 다음날 일에 지장을 받았을 지도 모르니까
- 어쩌면 그날 늦잠을 잤는데 에라이 모르겠다 나가지 말자 했을지도 모르니까
서로 서로 같은 동네의 소상공인인데 이렇게 피해를 주다니. 나는 약 6개월전부터 이 아저씨가 어딘가 정신이 팔려 있달까? 원래 멀끔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옷도 후줄근하고 수염도 깎지 않으며 매일 오겠다는 시간에 오지 않고 늦고 그럴 때마다 교통을 탓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수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카페에 배달을 해야 할 우유를 배달하지 않다니 이건 정말 큰일인데...
사람이 40대가 되고 경력이 20년이 넘다보면 안다. 이 사람은 안 변하겠구나, 이 사람은 어쩌면 변화가 있겠구나 하는 것들을. 나도 방송일을 하면서(나의 본업은 방송작가이다) 여러 황당했던 일들이 많았지만 이 우유 아저씨처럼 라디오 게스트가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서 생방송을 펑크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게스트의 집이 차로 10분 거리인 것도 알고 있었고 게스트가 녹음을 할 때도 늘 지각을 하는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생방송에 아예 나타나지 않을 줄은 몰랐다. 한 시간 전에 전화를 해볼걸, 30분 전에 전화를 해볼걸, 10분 전에 대타를 뛸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해볼걸.. 껄껄껄 해보아도 그 꼭지는 이미 망한 것을.
그 경험을 토대로 내가 알바를 하는 카페의 라떼는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장님에게 쓴소리를 했다. 사장님, 이대론 안 됩니다. 우유, 이거 정리하셔야 합니다. 전적으로 저한테 맡기셔야 합니다. 제가 본사에 전화할게요. (사장님이 안 된다고 했다) 과연 사장님은 어떤 결정을 했을까. 내일 물어봐야겠다. 여름의 끝에서 카페의 맛있는 아이스 라떼는 계속 되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