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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Jul 01. 2019

안녕하세요?

이제 알은척 하려고요.

해외에서 살다보면 꼭 언급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저는 한국인이 많은 곳에 살아요. 가는 데 마다 한국인이 있어요.’라든가 반대로 ‘저는 한국인이 없는 곳에 살아요. 차 타고 한참을 나가도 한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요.’일 것이다.


예전을 생각해보자. 해외에 나간다고 하면 여행이든 이민이든 한국인이 없는 곳이 더 나은 곳인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그 나라 언어를 배우려면 한국인이 없는 곳이어야 한다든가 유학/이민 성공담 중에는 일부러 김치도 먹지 않고 살아왔다는 이야기가 흔했다. 여행 관련 온라인 카페에는 ‘거기 한국인 많은가요?’와 같은 질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그 속뜻은 한국인이 많다면 그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일부러 내 돈주고 한국을 떠나보는 여행인데 왜 굳이 내 돈주고 한국인 구경을 외국에서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었을 게다.


그러다보니 여행 중에 한국인을 마주치면 속으로는 ‘와 한국인이다’라고 감탄을 하면서도 일부러, 굳이, 애써서, 힘껏 서로 모른 척 하기 바빴던 게 우리 한국인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한국인들은 결국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 수십년 동안 발품 팔아 다닌 여행자들/이민자들에 의해 드디어 밝혀졌으니 뭘 굳이 피하려고 하느냐,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어머 한국인이세요? 반가워요’하며 다같이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이라도 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한국인이 가는데마다 있는 동네에서 2년 정도 살다가 한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동네로 이사온 지 수년이 되었는데 이전 동네에서는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던 현지인 친구들이 많아졌고 대신 한국어 한식 한국티비 한국소식 등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전동네에서 일부러, 굳이, 애써서, 힘껏 모른 척 해주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검은 머리 갈색 눈동자의 사람만 보면 Are you Korean by any chance? 부터 묻고 보는 외로운 한국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Are you Korean by any chance? 라는 질문을 반대로 영국인들에게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케이팝의 영향이다.


처음에는 ‘왜? 아는 한국인이라도 있니? 나 소개해주려고?’라는 눈빛으로 예스,라고 답했다면 요즘엔 ‘아 너도 케이팝 팬이구나 반가워 응 나는 ‘한국인’이라고 해’라는 눈빛으로 예스,라고 답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한국인을 힘껏 모른 척 한다는 사실이 되게 어색해진 거다. 눈에 불을 켜고 한국인을 찾아다니는 해외 팬층 앞에서 한국인들은 서로 눈에 불을 켜고 모른 척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한국인을 찾아 다닌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나는 한국인인데 혹시 이 지역에 다른 한국인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연락을 바람’이라는 글도 올렸다. 수년 동안 못 보던 한국인이 그거 하나 올렸다고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고, 대신 한국에서 살다왔다는 영국인들의 쪽지를 여러 통 받았다. 부산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왔다는 아이 엄마, 서울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왔다는 정신건강상담사, 방탄소년단의 팬이라는 아줌마 등, 배경도 다양하다.


그동안 집에서 김치를 담그면서 (그렇다 김치도 직접 담가 먹는다. 왜냐하면 한인 마트가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 회사에서 만든 멸치액젓을 사용하는 거였다. 배추의 영어 이름도 Chinese Cabbage고 파도, 양파도 다 외국산인데 액젓이라도 한국산을 쓰자는 마음이었달까. 그런데 최근에 그 액젓을, 그냥 영국 수퍼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 그러니까 굳이 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한 시간 반 이상을 달려서 도착한 한인 마트에서만 살 수 있는 한글이 쓰여 있는 액젓이 아닌 - 피시 소스로 대체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것을 타협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뭘 썼든 간에 그것은 김치이다. 고춧가루 마늘 팍팍 넣어 맵지만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발효음식인 한국의 김치인 것은 내가 액젓을 피시소스로 바꿨다고 해서 변할 일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알은척 하기도 그런 거 아닐까. 내가 국적이 뭐든 어디에 살든(이민) 안 살든(여행) 어쨌든 한국인이고 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도 한국인이라는 게 확실하다면 뭐하러 일부러, 굳이, 애써서, 힘껏 모른 척 해야 할까. 그냥 유창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한 마디면 되지 않을까? 그걸 ‘안녕하세요?’로 받을지, 아니면 일부러, 굳이, 애써서, 힘껏, 어느 나라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라는 어색한 눈빛을 보낼 건지는 내가 안 정해도 된다. 듣는 사람이 대신 정해줄 거다. 휘유!



•한국인이 한국인을 마주쳤을 때 서로 모른 척 하는 몸짓은 너무 한국인 같아 보여서 민망하다

•해외 쇼핑몰에서 한국어 노래가 나온다고 좋아하며 와 한국어다! 하던 시절도 끝나가는 거 같다. 팝송 나온다고 와! 미국 노래다! 하지 않는 거처럼.

•그런데 노래는 반가워하면서 그동안 왜 사람은 반가워도 표시를 못했을까

•액젓을 피시소스로 바꿔도 그것이 김치인 것처럼 모른 척을 알은척으로 바꿔도 우리는 그냥 정 많은 한국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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