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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Sep 17. 2019

오코노미야끼에 김치

영국에는 피자 익****라는 피자 체인점이 있다. 1965년부터 시작해서 2014년부터는 중국 기업이 소유하게 되고 등등등의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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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역에서 여기저기 흔하게 볼 수 있는 피자집이고 체인점이라 이미 어떤 맛인지 아니까 만만하게 가끔 방문하는 곳이다. 아이들을 위한 식사 메뉴와 액티비티 컬러링 종이 색연필 등이 준비되어있어 부모들도 애용하는 곳이다.


특히 무더운 여름에는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영국도 가끔 며칠씩 더울 때가 있다) 에어컨이 빵빵 터지는 몇 안 되는 식당 중 하나라 종종 가게 된다. 영국은 관광객들이 오래된 멋진 건물을 구경하러 오는 곳이지만 대신에 그 건물에서는 에어컨 실외기를 찾아볼 수 없다. 그 말은 에어컨이 있는 건물이 한국만큼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무더웠던 지난 7월의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거기를 갔다. 평소처럼 주문을 했고 평소처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액티비티 종이를 받아보았다. 그런데...

피자와 비슷한 다른 나라의 음식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일본의 오코노미야끼를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김치를 토핑으로 얹어먹는다는 내용을 보게 된 것이다.


김치는 절여 만든 배추로 만든 음식이지만 일부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모두 중국인으로 치부해버리듯이 김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배추’를 그냥 이게 김치구나 하며 그것 자체가 김치인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종이에서 배추를 그냥 김치로 표현했을 가능성도 생각해보았다. 양배추가 아닌 그냥 배추는 영국에서 ‘Chinese cabbage’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음력설을 lunar new year라고 하지 않고 무심코 Chinese new year라고 하듯이, 다른 영국인들은 별 거 아니게 넘어가는 것들을 나 혼자서 또 오래, 깊이 생각하는 건가.. 피자를 먹으며 고민에 빠졌다.


나는 아이 학교 선생님들에게 음력설마다 ‘저희 아이 앞에서 중국 설이라는 말 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는 Lunar new year라고 합니다. 한국인 또는 수많은 다른 동양 나라에서도 중국 명절을 쇠는 게 아니니까요.’ 라는 말을 굳이 해가며 아이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오코노미야끼로 유명한 곳에서 태어났다는 일본인 친구에게도 물어보았다. ‘내가 지금 피자를 먹으러 왔는데 이런 게 있어. 어떻게 생각해?’ 그녀는 친한파라 평소에도 김치를 즐거먹는지라 자기는 그렇게 먹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먹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확인해주었다.


한국인 친구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은근하게 김치가 일본 음식인 것처럼 비춰지기 십상이다, 한국인이 아니라면 누가 오코노미야끼에 김치를 토핑해 먹냐, 특히 한일 경제전, 노 재팬 등과 맞물려 해외에 사는 나에게도 참전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레터가 완성되었다.


레터의 일부

나는 tbsefm, mbc, arirang 등에서 영어 방송 경력이 있는 친한 동생의 도움을 얻어 왜 나 같은 한국인들의 눈에 이 내용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 한국과 일본 사이는 특히 조심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너희 피자 가게가 영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오해하기 쉽게 대충 만들어진 내용이 나중에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였다.


(마무리로 다음에는 한국의 피자인 빈대떡을 소개해보는 건 어떠냐는 내용도 잊지 않았다.)


물론 대대적인 회수 작업이나 어마어마한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 답장이 올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늘 말해왔듯이 알고도,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비겁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행동했을 뿐이다.


답장이 왔다.


“굉장히 교육적인 내용의 레터를 잘 받아보았습니다. 흥미로운 읽을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액티비티 시트를 만드는 담당 부서에 내용을 전달하였고 혹시나 우리가 일으켰을지도 모르는 어떠한 불쾌감을 느꼈다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로봇이 복붙한 것 같은 짧은 답장이었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받았고 읽었고 답이 왔다는 것에 비겁한 사람이 된 거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한 사람이라도 김치가 왜 조금이라도 일본 음식의 일부인 것처럼 비추어져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알았다면 현재까지는 그걸로 됐다고 믿는다.


미국의 연예인 킴 카다시안이 보정속옷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그 이름을 기모노라고 했다가 일본인들의 반발로 이름을 수정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김치도 그랬으면 좋겠다. 전국의, 전 세계의 한국인들이 작게나마 꾸준히 알리고 알려서 (또는 반발해서/분발해서) 피자를 먹는 전세계의 아이들이 김치가 오코노미야끼의 토핑인 걸로 알게 되는 일은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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