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쏟아지는 못 보던 영단어들
나는 영문학과 출신이고 한국에 있는 영어 방송국에서도 일해보았고 교포와 결혼하여 영국에 살고 있지만 영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해본 적은 없다. 영어는 그냥 미드 영드를 보면서, 팝송을 들으면서, 외국인 동료들과 일하면서 이리저리 주워들은 정도. 웃기지마, 그래도 어느 정도 하니까 방송국에서도 일하고 외국에도 살겠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뭐 이걸로 누군갈 웃겼다면 그걸로 됐다.
여기 나이로 다섯 살,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매일 대여섯 통씩 보내는 이메일을 시력과 맞바꾸며 해석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CORONAVIRUS/ COVID-19
난 데일리 영어 뉴스 프로그램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쓰지 않는 용어에 민감한 편이다. 그 옛날, 맨 처음 돼지독감이 나왔을 때 Swine flu라고 방송하던 때가 있었다. (Latte is horse...)
그러다가 그것이 공식적으로는 H1N1이라더라, 하면서부터 다시 고쳐 쓰던 일이 있었다. 지금은 H1N2, H2N1, H3N1, H3N2, H2N3 아형이 있는 모양이다.
이번 코로나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우한폐렴이었다가 코로나가 되었고 공식적으로는 Covid-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되었다. 한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19라고 함께 쓰이듯이 영국에서도 Coronavirus, Covid-19가 함께 쓰이고 있다.
예전엔 이걸 사라, 저걸 사라 광고메일을 보내던 곳에서
지금은 Covid-19 관련 이메일들을 쏟아내고 있다.
2) Pandemic 팬데믹 / Epidemic 에피데믹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크게 유행하는 현상 : 팬데믹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감염병이 빠르게 유행하는 현상 : 에피데믹
에피데믹은 팬데믹의 전 단계로 둘 다 외국어이다. 그러므로 영국에서 쓰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 그러나 한국에서 쓰기엔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외래어와 외국어는 다르기 때문이다.
외래-어(外來語)「명사」 『언어』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에서 널리 쓰이는 단어
외국-어(外國語)「명사」 『언어』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아직 국어로 정착되지 않은 단어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피아노와 버스는 외래어다. 팬데믹과 에피데믹은 외국어다. 문체부와 국어원에서는 이 말들을 대체할 우리말로 각각 '세계적 유행(팬데믹)'과 '유행(에피데믹)'을 선정한 바 있다. 코로나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코로나감염병의 유행..으로 쓸 수 있겠다.
3) Key Workers
주변국들이 휴교를 하고 난리를 칠 때 끝까지 버티던 영국도 드디어 다음 주부터(3월 23일) 휴교에 들어간다. 어차피 곧 부활절 방학이 시작될 거였기 때문에 그때까지 버티려던 거였나 싶기도 하지만 어떤 부모들은 버티길 원했고 어떤 부모들은 닫기를 원했고 모두 원하는 게 다 달랐다.
이 와중에 다음 주에도 학교를 계속 보낼 수 있는 직업군이 존재한다. 그게 바로 Key Worker다. 열쇠공이 아니라 경찰, 의사/간호사(영국은 공공의료이다), 수퍼마켓 직원, 군인, 소방관, 도로/교통 관련 노동자 등등 공공 부문의 필수 근로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지금 집에도 오지 못하고 힘들게 버티고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학교에서는 아이를 평소처럼 보내라고 하는 것이다.
배우는 김에 비슷한 '키'가 들어간 외래어를 찾아보았다.
키노트(keynote)「명사」 『음악』 어떤 조(調)의 중심이 되는 주음(主音).
키-포인트(▼key point)「명사」 일의 요점이나 중심을 두는 부분.
키맨(key man)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 문제 해결 과정이나 의사 결정 과정을 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의 힘을 가진 사람.
(키워드도 여기에 속하는지는 모르겠다.)
4) Draw
학교 교장이 보낸 이메일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Please can I draw your attention to the attached letter."
여기서 draw는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draw라고 하면 그리는 것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교장의 말은 그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끌다, 반응을 끌어내다.. 정도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자기 레터를 관심있게 봐달라는 뜻인 거겠지.
5) Social Distancing
COVID-19가 영국보다 한국에서 더 빨랐기에 알아챌 수 있었던 낱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한 경제용어사전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찾아볼 수 있었다.
- 사회적 거리두기
.....2020년 2월말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인 기모란 교수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제안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반대였다면 이 누구나 알기 쉬운 훌륭한 우리말을 두고 지금쯤 모든 한국인들이 '소셜 디스턴싱'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아찔하다. (참고로 나는 MBC 우리말나들이 작가이다)
6) Blanket Closure
담요 닫기? Blanket School Closure란 모든 학교들이 전체 다 닫는 걸 의미한다. Blanket은 형용사로 쓸 때 ‘전반적’이라는 뜻을 담는다. 그래서 A blanket ban이라고 하면 전면 금지를 뜻한다.
7) Skeleton Staff
뼈대 스태프? 이 말은 최소한의 인원수로 근무하는 스태프를 일컫는 말이다. 많은 회사들이 최소한의 수만 남기고 모두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는 류의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낱말이다.
8) Overegg
달걀을 오버했다? 이 말은 영국에서 주로 overegg the pudding 꼴로 쓰여 푸딩(디저트)을 만들 때 달걀을 많이 쓰는 바람에 결과물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즉 위의 비비시 뉴스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영국 전문가들이 코로나 관련 사망과 관련해 터무니없이/불필요하게 과장 또는 꾸며왔는가,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긍정적이고 싶다. 그래서 이 와중에 영어라도 배워두고 싶어 써보았다.
친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2월에 한국에 다녀왔다.
해외에서 왔다고 많은 것들이 2주 뒤로 미뤄졌다. 건강검진 받는 곳에서도 해외에서 왔으면 2주 뒤로 예약을 미루라고 했고, 오랜만에 가는 치과, 피부과에서도 그랬다.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가 입을 열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지인들도 악수조차 하지 않았고 마스크 뒤로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굳이 동생 결혼식이라고 해서 참석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집에도 예비 신부의 집에도 아빠가 안 계셨다. 안 그래도 없는 가족 구성원에 나라도 참석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강행했고 별일없이 다녀왔지만 그야말로 운이 좋았던 것이겠지.)
그리고 영국에 돌아오니 학교에서 아이를 학교를 2주 동안 보내지 말라고 했다. 증상이 없으니 히드로 공항에서도 잡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오지 말라고 하니 서운했지만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자가 격리를 했다. (당시엔 한국에서 온 사람은 무조건 2주 자가 격리였지만 지금은 대구/청도 지역에서 온 사람들만 자가 격리하는 걸로 바뀌었다) 자가 격리하는 동안 친하지 않은 엄마에게는 평소 안 하던 비디오콜까지 왔다. 우리가 언제부터 얼굴보고 말하는 사이였지? 말로는 아이들이 웰컴 인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우리가 정말 아픈지 안아픈지 왜 자가 격리를 하는지 직접 생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진짜 친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해서 꺼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그 기간에 만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것까지 굳이 적어야 하는 현실이 웃프다) 잘 배우고 뉴스를 제대로 가려 볼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이 더 안전한 나라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증상 없이 2주가 흘러 아이는 학교에 돌아갔다. 그런데 지난 주에 호주로 크루즈여행을 다녀왔다는 아이들이 똑같이 등교를 한 거다. 너희는 왜 자가 격리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학교에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호주는 WHO에서 정한 위험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왔단다. 다시 서운하고 화가났다. (이 와중에 이탈리아로 스키여행을 다녀온 가족도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자가 격리 중이었다. 이탈리아는 WHO가 정한 국가니까.)
막 한국에서 돌아온 나는 '이 학교야....지금 이탈리아 호주 따질 때가 아닐 텐데.. 쯔쯔' 혀를 찼지만 '문서에 적힌대로', '융통성 없이'로 여태 버텨온 나라인데 그걸 이제와서 고치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버티던 영국도 결국 휴교를 한다. 또 다시 집에 있게 된 아이가 내게 쓸 기회와 융통성을 준다면 다음엔 영국 휴교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적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