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영어 2

Let me tell you the story of 2020

by Aeon Park

코로나19와 관련, 인터넷에서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읽었다.



미래의 아이들이 묻는다.

'왜 문에서 문고리가 사라진 거죠?'

'음.. 2020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주마.'



진짜로 있을 법한 이야기라 그냥 피식 웃고 말 수가 없었다.

해외살이 10년이 가까워오는데 지금처럼 낱말 하나하나 집중해서 읽은 적이 있었던가 싶다.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는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유행) 속에서 살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나. 영국 Lockdown(록다운) 한 달 차, 그동안 (지극히) 개인적으로 여겨본 영어 낱말들을 소개해본다.


1) Lockdown

먼저 록다운은 움직임, 행동에 대한 제재를 뜻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락다운'으로 쓰는 걸 볼 수 있는데 국립국어원에서 Door lock의 규범 표기를 '도어 록'으로 정했다면 Lockdown도 '록다운'이 맞는 게 아닌가 싶다. Shut down은 Lockdown과 또 다르다. 셧다운(숏다운?)은 공장이나 사업체의 폐쇄를 뜻한다. 영국에서는 wind up이라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


2) Removes

나는 학부모이다. 흔히 사람들이 학부형이라고 잘못 말하곤 하는데 학부형은 학생의 아버지(부)와 형을 가리키는 말로 구시대적 발상의 낱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만 학생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옛날 사고방식에서 파생된 낱말이랄까. 아무리 사고방식이 구시대적이라고 해도 일단 학부형에는 여자가 없으니 엄마들이 본인을 학부형이라고 칭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가서, 나는 학부모이다2. 록다운이 길어지면서 반쪽짜리 온라인개학을 했는데 학교 학부모들과 학비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학교에 학생들을 보내지도 않으면서 학비를 왜 내야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론 중에 계속해서 Removes라는 낱말이 나왔다. 나처럼 변변치 않은 영어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 귀에는 그저 '제거하다'라고만 들릴 수밖에 없다.


REMOVE

(Education) Brit (in certain schools) a class or form, esp one for children of about 14 years, designed to introduce them to the greater responsibilities of a more senior position in the school


알고보니 이 말은 영국 교육 시스템에서 14세 학생들을 가리키는 거였다. 다섯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외국 이민자인 내가 이 말을 '제거하다'로 들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괜스레 스스로를 위로했다.


3) Weather The Storm

스톰을 웨더한다... 그러니까 폭풍을 날씨한다는 건데.. 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내온 메일 속 저 낱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weather는 동사로 '(역경 등을) 무사히 헤쳐 나가다'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 weather the storm은 고비를 넘기다, 역경을 이겨내다...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교장 선생님, 정말 역경을 함께 이겨내고 싶으시면 다음 학기 학비에 대해 재고해주시죠.)



4) Opt Out

코로나19로 인해 구성된 '학비 지출 반대 학부모 연대(?)'에서 또 많이 나온 낱말 하나가 Opt Out이다. 온라인 수업을 다같이 옵트아웃하자는 건데 영국영어에서 opt out은 '병원·학교 따위가 독립 경영 체제가 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대화 속 옵트 아웃은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온라인 수업을 받지 말고 각자 독자적으로 행동함으로서 학교 측에 우리에게 다음 학기 학비를 낼 의사가 없음을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가기 전에는) 명확히 하자는 뜻으로 쓰인 것 같다.


IT 쪽에서는 '정보 소유 당사자가 정보수집을 명시적으로 거부할 때에만 정보수집을 중단하는, 블랙리스트 방식의 정보 수집 방식(출처 : 나무위키)'을 의미한다고 한다.


올해 가을부터 스코틀랜드에서는 장기기증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 장기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추정하는 제도를 시행할 예정인데 그걸 '옵트아웃' 제도라고 부른다.


"An "opt-out" system for organ donation in Scotland will come into force in autumn 2020, the Scottish government has announced. At present, people must "opt in" by registering to donate their organs for transplants after they die. (BBC NEWS)"


스포츠 쪽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다. (나는 왜 그동안 이 낱말을 들어보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널리 쓰이는 말이었다...)


* 옵트아웃(Opt-Out) : 선수나 구단이 계약 당시 명시한 조건을 충족하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제도



5) Furlough(강제 휴가), Pay Cut(감봉), Laid Off(일시 해고된)

개인적으로 Pay Cut이나 Laid Off까지는 그동안 여기저기서 들어온 낱말이라고 치고 이번엔 Furlough라는 낱말이 코로나19 관련 뉴스 속에 등판했다. 온갖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You're fired!'를 외치는 장면을 많이 보아왔듯이 코로나19로 이제는 'You're furloughed!'가 흔하게 된 것이다. 우리말로는 '넌 강제 휴가를 당했어!'라고 하면 말맛이 맞을까?

6) Shambolic

이번엔 비격식 낱말도 살펴보자. 상황이 상황인지라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들도 기자들 앞에서 감정적으로 말이 나오기 쉽다. 이런 관점에서 Shambolic이라는 영국영어가 눈에 띄었다. 난장판이고 엉망인 걸 뜻하는 비격식 영국 영어이다.


BBC NEWS 갈무리

한국어로 난장판이다, 엉망이다, 라고 하면 충분히 격식있고 진정된 것처럼 들리지만 이 낱말은 비격식적인 구어체로 공식석상에서는 나오기 힘든 말이랄까. 샴볼릭!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비격식투라고 해도 말맛이 좋다고 생각된다. 입에 착 붙는다. 샴볼릭!


번외) Pizza Saver와 Void fill

번외도 준비했다. 록다운으로 인해 외식이 불가능해져서 피자를 주문해 먹는 집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평소에 궁금하지 않던 낱말까지 살펴보게 되었는데 피자를 주문하면 피자 한 가운데에 꽂혀있는 삼발이를 뭐라고 할까? 바로 Pizza Saver다. 한국어로는 피자 삼발이, 피자 보호기라고 부르는 것 같다.


배달하면 또 엄청난 양의 배달박스들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요즘엔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넣는 것들이 다양해짐을 느낀다. 종이를 아무렇게나 구겨서 넣기도 하고, 물에 녹는 재질의 퍼프도 있고, 공기를 팽팽하게 넣은 플라스틱 봉지들도 흔히 받는다. 그걸 모두 Void Fill이라고 한다. fill a void가 공백을 채우다는 뜻인데 Void Fill은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들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Inflated air pillows

Bubble wrap packaging

Paper packaging

Foam packaging

Biodegradable loose fill

등을 찾을 수 있었다. 내용물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Void Fill을 찾아서 함께 넣으면 된다.


어린 아이들은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든 다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에 살아보니 봄여름가을겨울 날씨가 다 으스스하고 촉촉한데 느낌 탓일까, 록다운 기간 내내 햇빛이 쨍쨍하다. 안에서 보는 밖이라 아마도 더 환해보이는 거겠지만 그 으스스하고 왼쪽 어깨에 축축하게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동시에 오른쪽 어깨에 내리쬐던 따뜻한 햇볕이 그립다.


로체스터 하이스트리트

두발로 하는 산책도 괜스레 물리적 거리두기와 거리가 있어보여서(?) 하루는 차로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Lockdown이 산책을 금지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매년 이맘 때는 저 꽃나무 밑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지 5분도 안 되어 아는 사람을 마주친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합석해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면 또 아는 사람 하나가 지나가며 인사를 건넨다. 작은 동네라 한 자리에 한 시간 이상 앉아있으면 적어도 아는 사람 3명 정도는 가볍게 만날 수 있는 마법의 공간이다. 지금은 비록 차로 잠깐 나온 중에 이렇게 창문을 열고 멀리서 사진이나 찍어두는 신세이지만 이걸 버티고 나면 다시 그 마법을 부릴 수 있다. 그건 꽃나무가 주는 마법도, 커피가 주는 마법도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부리는 마법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나면 문고리가 사라진 문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뒷사람을 위해 무거운 문을 힘들게 잡아주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날 거라 믿는다. Stay Home, Save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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