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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Jul 07. 2020

1층으로 가는 길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상가에서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젖은 머리의 나와

같은 목욕탕에서 나온 어느 할머니가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강기가 왔다. 내려가는 방향이었다.

어느 할아버지께서 이미 타고 계셨다.

1층 버튼이 눌러져있으니 이분도 내려가는 분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누르지 않아도 자동으로 닫힐 거지만

나는 그냥 습관적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말도 없이

손으로 닫히고 있는 문을 잡았다.

틈에 끼어있는 작은 쓰레기 종이 조각을 줍기 위해서였다.

잠깐만, 이라고 하셨으면 내가 열림 버튼을 빨리 눌렀을 텐데,

아무말없이 행동하시느라 손이 문에 끼었다가 빠졌다.

별로 개의치 않아하시는 것 같아 나도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할 일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본인이 버린 쓰레기도 아닌데

왜 그러셨을까 궁금함도 잠시.


다른 층에서 승강기가 멈추고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있는 할머니가 타셨다.

이 할머니는 이 층에 있는 식당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되는데

앞치마도 하고 계시니 아마 식당에서 일하는 분일 거다.


승강기에는 1층 버튼이 눌러져있지만

이분이 지하층으로 가실 지도 모를 일,

혹시 1층에 가시는 거냐고,

지하로 가시는 거면 버튼을 눌러드리겠다 말씀드렸다.


아니에요. 1층 가요. 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아까 그 할아버지, 끼어들며 말씀하신다.

2층엔 뭐하러 가?


할머니는 다시 대답하신다.

아뇨 1층에 가요.

2층에 간다며.

아뇨 1층에 간다고 했는데요.

마스크 때문에 잘 안 들려.


느낌이 온다.

이 할아버지는 이 건물의 주인인 거다.

줄여서 건물주. 닉네임 갓물주.

이 할아버지가 건물주여야 이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 이 할머니에게 반말을 하는 것도, 자기랑 상관없는 정말 작은 쓰레기 조각을 승강기 문에 손을 끼어가면서 줍는 것도 설명이 된다. 그리고 자기가 알기론 2층엔 아무 것도 없는데 다른 층 세입자가 2층에 가려고 하는 걸 의아해한 것도 설명이 된다.


1층. 문이 열리고 짐을 잔뜩 든 할머니부터 내리기 시작한다. 함께 목욕탕에서 나온 젖은 머리의 할머니도 내리신다. 나는 할아버지 먼저 내리시라는 눈빛을 마스크 위로 열심히 보냈지만 손님 먼저 내리라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더 강력했기에 먼저 내리고 만다.    


7층 목욕탕에서 1층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

고국에 왔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한 외출이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좋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도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좋은 내 나라.



*고:국 : 주로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를 이르는 말.


**영국에서는 승강기를 리프트lift라고 한다. 여기선 엘리베이터, 줄여서 엘베라고 하지만 난 승강기가 더 좋다. 영어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아무도 안 쓰니까! 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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