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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ug 22. 2020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7세 아이의 고'국'분투 스토리

한국에 들어와 산 지 석 달을 향해 가고 있다. (석 달이 되어 가고 있다, 라고 했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 되어 가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영어 become을 번역한 거 같은 느낌을 준다.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우리말다운 건지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수정했다라고 썼다가 고친 것이다. 한 문장 쓰는 데 이렇게 예민해서야.) 해외에서 태어나 계속 해외에서만 살던 우리 아이는 흔히 말하는 리터니가 아니다. 리턴한 게 아니니까. 한국방문이 아예 처음은 아니지만 아기 바구니에 실려온 할머니집 '방문'이 아니라 '삶'을 위해 온 건 처음이기에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데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브런치 쓰기창을 열었다.


1. 다섯 살에서 일곱 살로

영국은 아기가 태어나고 1년이 지나 다시 태어난 날이 되면 1살이 된다. 그리고 다시 1년을 더 살고 생일이 되면 2살이다. 이런 식으로 지금 우리 아이는 다섯 살인데,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날아오니 갑자기 일곱 살이 되었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너 몇 살이니?'라고 물으면 통통한 손가락을 전부 좍 피며 꼬박꼬박 '다섯 살'이라고 대답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실 일곱 살인 거다. 질문을 한 어른들의 대답은 주로 다음과 같다.


"다섯 살? 키가 크네!"


그러면 나는 아이가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속닥속닥) 아니예요, 일곱 살이예요'라고 답을 다시 하고 어른들은 아이가 아직 숫자를 잘 모르나보네, 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 아이가 나의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는데 그러면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답하기도 한다.


"아니야! 나 일곱 살 아니야! 다섯 살이야!"


갑자기 두 번의 생일파티가 사라졌으니 억울하기도 하겠다. 한국 생활 석 달 만에 다행히도 지금은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영국에서는 다섯 살이지만 한국에서는 일곱 살이야."라고 답할 줄도 안다.

여섯 살, 일곱 살 파티 놓치지 않을 거예요




2. 반말과 존댓말

MBC 우리말나들이 작가가 키우는 아이라면 당연히 존대말 비속어 표준어 정도는 모두 구분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난 해외에 살 때는 일부러 아이에게 존댓말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조금 남다른데, 일부 한국인들이 내 남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걸 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내 남편은 교포라 영어 이름이 여권에 인쇄되는 자기의 본명이다. 한국인들이 해외에 가서 외국인들이 부르기 쉽게 그냥 지은 영어이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어식, 해외식이라는 명목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그의 이름을 찍찍 불렀고(그는 개의치 않았다. 나만 기분 나빴다) 그럴 거면 '영어식'으로 계속 영어로 대화를 할 것이지 이름만 그렇게 부르고 또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도 그들의 남편's 한국 이름을 함부로 불러도 되는 건가? 다섯 살 많은 오빠에게 '길동~' 열 살 많은 형에게 '개똥~' 이렇게? 길동이오빠, 개똥이형, 다 빼고 내 남편을 길동! 개똥! 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들릴 뿐이었다.  

거기에 그들은 우리 아이까지 건드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한국인들과 교류가 많지 않아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상태로 자라나고 있었는데 가끔 만나는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언니, 누나'는 다 빼고 아이의 이름을 찍찍 부르는 것이었다. 부모들은 '언니라고 해야지' '누나라고 불러야지'라며 본인 아이들을 고치지 않았다. 역시나 '영어식/해외식'이라는 명목으로. 이름을 그렇게 부를 거면 뒤에 오는 말도 다 영어여야지, 왜 이름만 찍찍 부르고 뒤는 한국어인데? 그렇게 싸가지 없는 건 한국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어느 순간 존댓말을 가르치지 않게 된 것이다. 너를 만나는 사람들이 너에게도 너의 아빠에게도 존대하지 않는데(=존중하지 않는데) 왜 너만 (안 그래도 어려운 한국어를) 존댓말을 해야하니. 그냥 하지 말자. 너도 이름 불러. 너도 야 해. 너야말로 영어밖에 모르는 찐교포인데 그렇다면 그래도 된다는 게 그들의 논리 아니었니?  

내가 쏘아올린 '지극히 개인적인' 작은 분노는 결국 아이가 존댓말을 모르는 사람으로 자라게 만들었고 그러다가 올 여름부터, 계획에 없던 한국살이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You를 한국어로 변환해서 생각해야했고 결국 아무에게나 '너'라고 부르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직 BA지 / SU박 이라고 쓰지만 점차 나아질 거예요.




3. 슬기로운 한국생활 

코로나19로 퇴소한 아이가 많아서인지 한국에 오자마자 사립유치원에 대기하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영국에서 3년 동안 이미 학교 생활을 하던 아이에게 한국 나이와 학제에 맞게 다시 유치원 생활을 하라고 하는 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있나.

우선 선생님을 부르는 일부터 달라졌다. 영국에서는 Mrs. T, Mr. C, Miss N 등 선생님의 성 앞에 Mrs, Mr, Miss 등을 붙여 불렀다. 그 버릇 그대로 유치원 한국인 선생님에게 Miss G라고 부르면 이건 뭐 천하의 싸가지 없는 학생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이에겐 사실 공손하게 부르는 방법이었을 뿐인데.

나는 한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이의 한국어 걱정을 가장 많이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린 아이들의 언어 습득력은 놀랍도록 빠르다며 그걸 걱정할 게 아니라 문화차이를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고 역시 경험자들의 말이 맞았다.


What is 쮸쮸바?

Why do kids always wear same shoes in Korea? (크록스 얘기다)

Why is Three Thousand and Seven(3007) in Korean short?(뜨리 따우전드 앤드 세븐이 한국어로는 삼천칠로 줄어드는 기적)

What does 손목 mean? Is it SMOKE? (손목이 'S뫀'일 거라고 생각)

왜 유치원 친구들은 '새터데이Saturday'를 '세러데이'라고 해? '베터Better'인데 선생님이 '베러'라고 그랬어.

Zing Zing Zing, What's that noise? (매미 얘기다. 영국엔 매미가 없다.)


아이의 다양한 삼천칠 가지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다보면 우여곡절이 줄어드는 날이 올 것이다. 비록 한국이 아이 입장에서는 어딜 가나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하고, 비가 매일 오는 나라에서 왔다고 말하기가 민망하게 올해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오고, 비가 많이 오지 않을 때는 너무 더워 온 몸에 땀띠가 나고, 유치원은 스파게티와 피시앤칩스는 안 나오고 못 보던 한식만 계속 나오는 곳이지만 그래도 한국이 좋단다. 다행이고 고맙다. 이 나라 그러니까 내 나라를 좋아해줘서 너무 고맙다.  

엄마, 한국 아파트들은 이렇게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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