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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ug 23. 2020

익숙한 걸 바꾸어 읽기

Face북을 Pace북이라고 읽어도 괜찮아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 아이는 '벤'이 남자 이름이고 '홀리'가 여자 이름인 것은 알지만 '소영'이 여자 이름이고 '민석'이 남자 이름이라는 건 잘 알지 못한다. 한국에서 아이가 다니기 시작한 동네 유치원에서는 영어 시간을 위해 한국인인 아이들도 모두 영어 이름을 갖고 있는데 엘사, 제임스, 제이크 등 다양하다. 아이는 한국 생활 석 달이 다 되어가는 요즘도 친구들을 영어 이름으로 지칭한다. 친구들의 한국어 본명은 입에 붙지 않는지 본인에게 더 익숙한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에게 <옛날에 소영이와 민석이가 살고 있었어요>따위로 시작하는 동화책을 읽어준다면 집중은 커녕 흥미를 돋울 수도 없다. 그러면 아이에게 이미 익숙한 영국 만화를 한국어로 바꾸어서 이야기해준다면 어떨까? 

한국에서도 유명한 페파피그(Peppa Pig) 제작진이 만든 벤과 홀리의 작은 왕국(Ben and Holly's Little Kingdom)을 예로 들어보자. 

  


어딘가 숨겨진 곳에 엘프와 페어리가 살았습니다. 그곳에 사는 모두는 아주 아주 작았습니다. 

엘프는 한국에서도 엘프라고 해. 

페어리는 요정이야. 

엘프와 페어리는 영어로는 F 발음이지만 한국어로는 P로 발음해도 다 알아들어.


그 작은 왕국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일부를 살펴보면,


프린세스 홀리(Princess Holly) 

벤 엘프(Ben Elf) 

씨슬 왕과 씨슬 왕비 (King Thistle and Queen Thistle) 

장로 엘프(Wise Old Elf) 

데이지와 포피(Daisy and Poppy) 

내니 플럼(Nanny Plum) 


Nanny Plum 그리고 Ben & Holly


프린세스 홀리에서 홀리가 식물인 건 알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쓰이는 거 말이야. 엄마도 몰랐는데 한국어로는 호랑가시나무라고 한대. 잎 끝이 날카롭잖아? 마치 호랑이발톱 같다고 해서 호랑가시라고 지은 거래. 근데 엄마는 살면서 호랑가시나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너는 홀리를 더 어릴 때부터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면 플럼은 뭘까? 한국에서 플럼은 자두야. 혹시 '안녕 자두야'라는 만화 들어본 적 있어? 그러고보니 한국에도 영국처럼 자두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가 있었네?  






영어로만 책을 읽을 때 또는 한국어로만 책을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힘이 든다. 하지만 한번에 다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할 만하다. 욕심 같아선 할머니가 즐겨 드시는 밀크 씨슬(Milk Thistle) 약통을 가져와서 이게 씨슬 왕 할 때 씨슬이야,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아니면 혹시 띠슬인가?) 이건 일곱 살 아이가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가 아니므로 포기한다. 사실 이건 어른들도 잘 모를 때가 많다. 밀크 씨슬은 굳이 우리말로 부르자면 우유 엉겅퀴 정도가 될 것 같다. 씨슬(Thislte)이 바로 엉겅퀴이기 때문이다. 엉겅퀴는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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