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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pr 26. 2021

Crisp은 바삭한 거 아니었어?

영국에 살 때 감자 과자라고 해야 하나, 감자칩을 Crisp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감자칩'을 영어로 말해보라고 한다면 potato chips라고 할 것 같은데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실생활에서는 Crisp을 훨씬 더 많이 쓰고 있었다. 그래서 Crisp은 감자칩, 그리고 감자튀김은 Chips라고 부르는 영국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졌다. 갑자기 손세정제를 지니고 다니는 것이 집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것만큼 중요해졌는데 (그렇다.. 영국은 아직도 집열쇠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단 한번도 번호 도어록을 단 영국 집을 본 적이 없다) 남편이 회사에서 지급받았다고 한 손세정제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Crisp. 


Crisp & Fresh


앗 너는 감자칩 봉지에나 쓰여 있어야 할 낱말인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같이 있던 남편에게(영국에서 산 기간이 한국에서 산 기간보다 더 긴 시민권자) 명확한 뜻을 물었지만 이럴 때마다 그는 올바르게 답하지 못한다. 한국어 어휘가 많이 달리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있잖아.. 이런 건데 그.. 저기 그..뭐랄까. 그냥 내가 영어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Crisp. 

첫 번째 뜻은 '기분 좋게 바삭바삭한'이다. 우리가 음식을 두고 크리스피하다고 말하는 그거다. 바삭바삭한 손세정제라.. 이건 아니다. 

두 번째 뜻은 '과일이나 채소가 아삭아삭한'이다. 사과나 상추를 크리스피하다고 표현할 때 쓰는 거. 패스.

세 번째 뜻은 '새 것이라서 주름 없이 빳빳한'이다. 새 지폐를 두고 a crisp new 10 pound paper note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 아니다. 영국 지폐는 몇 년 전에 호주 돈처럼 플라스틱 재질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paper가 아니라 Polymer Plastic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네 번째 뜻은 '공기나 날씨가 상쾌한'이다. 오. 이거일 지도 모른다. 상쾌한 손세정제. 드디어 말이 된다. 


주욱 영한사전을 읽다보면 Crisp에는 '말하는 사람의 방식이 사무적인, 딱딱한'이라는 뜻도 나온다. His answer was crisp. 이렇게만 말하면 그가 딱딱하게 <로봇처럼> 답한 것처럼 읽히기 쉽지만 영영사전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Crisp는 Clear와 비슷한 말로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 A crisp way of speaking, writing, or behaving is quick, confident, and effective:

a crisp reply

a crisp, efficient manner


딱 부러지게, 자신감 있게, 효과적으로 대답했다고 해서 '사무적이고 딱딱하다'고만 볼 수는 없을 테니까. 



뱀발 (+뱀발 붙이는 재미로 글 써요) 

사진 속 손세정제는 한국에 없는 것 같아요. 영국에서 록다운되었을 때 소중하게 지급받은 거라 애착손세정제가 되었습니다. 다 쓰고도 통을 버리지 않고 다른 세정제를 담아서 쓰고 있어요. 손세정제도 1인당 몇 개로 제한해서 살 수 있었던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바삭바삭한 너, 잃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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