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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May 11. 2021

등하교 오디세이

등교시간. 8시 30분부터 늦으면 9시 10분까지 계속 되는 초등학생, 특히 저학년의 등교시간은 출근길 지옥과 견줄만하다. 숙취 못지 않은 표정으로 잠에 취한 아이들을 깨우는 것을 시작으로 옷 입어라, 밥 먹어라, 밥 먹고 이 닦아라, 이 안 닦으면 오후에 치과갈 거다(협박이 이른 아침부터 술술 나오더라), 실내화주머니 챙겨라 등등 매일 하는 말인데도 또 해야 듣는 시늉이라도 한다. 예전에 교육방송(EBS)에서 영국과 한국 어린이의 등교 풍경을 비교해서 보여준 적이 있다. 모든 걸 스스로 하는 영국 아이와, 엄마가 먹여주는 밥을 겨우 씹고, 엄마가 닦아주는 이를 가만히 내밀고 있던 한국 아이. 영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작년에 한국에 들어온 나는 그 중간쯤이랄까.


머리 묶을 때 가만히 있을 것 같다.. 싶으면 묶어주지만 갑자기 심통을 부리며 이 머리핀은 이래서 싫다, 저건 저래서 싫다, 하면 그냥 산발로 보낸다. 싸우기 싫다. 이 아이의 미모를 +1 증가시키기 위해 나와의 관계가 -10이되는 게 싫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하루가 활기차다는 영양교육철학에 굳이 반기를 들 생각은 없지만 그 '든든히'가 반드시 밥+국 한식 콤비인 것은 아닐 터. 아침은 든든하지만 간단하게 버터 바른 토스트 한 개. 더 달라고 하면 두 개. 이마저도 먹기 싫다고 하면 그냥 안 준다. 아침을 굶으면 점심 급식을 열심히 먹겠거니..하며.


오늘은 비가 와서 두꺼운 비옷을 겉옷 대신 입히려고 했는데 입기 싫단다. 그래, 입지 마. 그런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 마디 한다. '추워, 엄마. 아까 그 비옷 다시 입을래.' 한국 엄마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비옷을 들고라도 나왔을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니. 너가 아까 기회가 있을 때 안 입는 걸 택했고 그러니까 네 말에 책임을 져. 안 입고 학교 가는 거야.'(잠깐만. 너 지난 주에는 바다 수영도 했으면서 지금 이게 춥다고?) 대신 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비옷을 들고 데리러 갔다. 우산을 쓰고 나를 향해 뛰어오는 아이에게 물었다. '이번엔 비옷 입을 거야?' '어! 입을래! 근데 우산은 안 쓸래!' 아.. 너와 말씨름이 무슨 의미가 있니. 비옷에 모자가 달려있지만 제대로 쓰지 않아 머리는 다 젖은 채로 집에 도착했다.  


이렇게 아이와 나, 둘만 있어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여기에 가끔 외부 요소가 훅 치고 들어온다. 오늘을 예로 들어보자. 같은 아파트에 이사 들어오는 집이 있었다. 한창 아이들이 등교하는 중인 9시 이전.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이 승강기를 타고 내려왔고 우리 층에서 문이 열렸다. 그들은 마스크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 가만히 입이라도 닫고 있어주면 좋을 텐데 거기에 커피까지 후루룩 후루룩 드시고 계셨다.


-엄마, 아저씨가 마스크 안 썼어.


반짝거리는 책가방을 멘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당황할 짬밥은 아니다. 아저씨들도, 나도. '그러네, 안 썼네. 학교에서는 꼭 마스크 쓰고 있어야 돼, 안 그러면 선생님한테 혼.나.지?'정도의 멘트는 가볍게, 노오오력 없이도 날릴 수 있다. 모국어가 되는 곳에서 산다는 기쁨은 의외에 장소에서 빵빵 터진다. 노마스크인들은 적어도 민망함이라는 걸 느끼긴 했는지 커피를 급히 원샷하긴 하더라.


어느 날은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은 초록불이 켜진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있든 말든 차량의 우회전이 가능했었나보다. 20년 동안 장롱면허였던 적은 없지만 영국과 방향이 달라 한국에서 운전을 안 한지 오래되어 잊고 있었다. 영국에선 불법이었다. 초록불에 아이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내 앞으로 하얀 차가 -마치 잠깐만, 나 먼저 좀 지나갈게, 라는 느낌으로- 훅 지나갔다. 차 꽁무니를 향해 두 손을 흔들며 "Seriously?!"라는 큰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아직은 급하면 영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Make sure you allow the pedestrian to fully cross the road before you set off again. (Image: GETTY)


등하굣길이 이렇게 늘 치열하기만 할까. 봄만 되면 우리나라의 보도블록들은 새로 피어나는 꽃처럼 새 단장을 한다. 원데이, 투데이에 끝나지 않을 그 공사에 필요한 물품들이 파란 비닐에 덮여있었는데 나는 그걸 고래라고 말했다.


"바다에 사는 고래가 밤사이 여기까지 헤엄을 쳤는데 갑자기 물이 다 빠져버리는 바람에 여기에서 쉬고 있는 거야."

"거짓말!"  

처음엔 거짓말이라며 반박하였지만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매일 등하굣길에 보게 되는 고래에게 결국 인사를 하는 날이 온다.


"안녕, 파란 고래야! 여기서 잘 쉬고 있어, 난 학교 다녀올게!"


그리고 공사가 끝나고, 공사도구들을 다 치워서 빈 자리는, 더 이상 그냥 빈 자리가 아니다. <고래가 쉬었다 간 자리>이다.

이건 또 뭘까.

나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건 <슈퍼맨이 흘리고 간 망토>야. 우리가 자는 사이에 슈퍼맨하고 빌런(villain)하고 날아다니면서 막 싸웠는데 말이야, 그때 슈퍼맨의 망토가 땅으로 떨어져버렸어! 하지만 우리가 다시 갖다 줄 필요는 없어. Superheroes들이 지나간 자리를 치우는 팀이 따로 있는데 걔네가 오늘 늦나봐. 너도 오늘 늦게 일어나서 학교에 늦을 지도 몰라, 어서 뛰자!


후후훗 좋아, 자연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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