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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pr 08. 2021

나는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없다.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새해다짐을 한다. 나는 매년 새해다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작년 new year's resolution은 기억이 난다. (영어로 쓴 이유는 작년엔 외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올해는 작년보다 나를 위한 1파운드를 더 쓰자.>였다. 5년 동안 계속된 육아에 지친 엄마였던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다짐이었다. 2파운드짜리 커피 대신 3파운드짜리 마시고 10파운드짜리 중고 드레스와 15파운드짜리 중고 드레스 사이에서 고민하지 말고 15파운드를 지출해보자, 생각했다. 무슨 300 파운드짜리 신상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걸로 고민을 했느냐면, 그걸 아끼면 아기에게 장난감 하나를 더 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파운드 차이로 커피 맛이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만은 1파운드를 더 주고 '그 기분'을 사는 거니까 그렇게 했다. 그런데 1파운드 물가를 올린 내 다짐은 몇 달 가지 못하였다. 코로나 시국이 된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해졌고 다시 1파운드라도 아껴야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고, 영국의 상황이 악화되어 한국으로 이사를 하고, 이렇게 한국에서 또 다른 새해(2021)를 맞이하였다. 


4월이 되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굳이 꽃구경을 가지 않아도 아파트 단지에 꽃들이 대단하게 피어댄다. 그제야 '올해 새해다짐을 했던가' 싶었다. 작년 새해다짐이 시시하게 지나갔으니 올해 한번 더 재탕해볼까. <나를 위해 1537원을 더 쓰자?> 익숙한 원화로 바뀌어서 그런가, 인심 쓴 거 같지가 않다. 물론 얼마인 것이 핵심어인 건 아닐 터, 여기서 핵심어는 '나를 위해'이다. #나를위해 #나를위한 #FORME  


1분기가 지나도 벌써 지난, 이제야 새해다짐을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내가 한번도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문득 생각해낸다. 요즘 사람들은 혼행이라고 하던가? 런던에서 혼자 미술관에 다니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했던 것은 여기 해당되지 않는다. 거긴 한동안 삶의 터전이었으니까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는 주말마다 가족여행을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여행에 한이 맺힌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토요일 새벽마다 나와 동생을 깨워서(차가 밀린다는 이유로.. 깜깜한 새벽 기상) 산으로 들로 바다로 계곡으로 여행을 갔다. 당시의 갖은 그리고 잦은 여행으로부터 얻은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이 지금의 나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도 될 만큼. 첫 비행기 경험은 제주도를 갈 때였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때 그것이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될 줄도 모르고 말을 타고 꿀에 버무린 지네가루를 먹고 제주똥돼지 체험을 했다. 그리고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당분간 가족여행은 하지 못하였다. 


대학생이 되었다. 유치원 때부터 친하던 친구가 유럽배낭여행을 제안했다. 그럴까? 그때 영국을 시작으로 서유럽을 돌고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20대의 나는, 30대에는 영국에서 살게 될 줄도 모르고 피시앤칩스를 먹고 뮤지컬을 보고 타워브리지에서 사진을 찍었다. 유럽에서 돌아오자 또 다른 친구가 태국 여행을 제안했다. 친구의 이모가 태국에 계신다며 가서 놀다 오자고 해서 또 졸래졸래 따라갔다.  


몇 년이 지나고 또 다른 친구들이 동남아 여행을 제안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예약해서 다녀왔고 그때 말레이시아에서 우연히 만난 말레이인 친구는 내 결혼식에도 왔다. 내가 영국으로 결혼이민을 갔을 때도 런던에서 다시 만났고 자기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약혼녀를 데리고 다시 런던에 온 적도 있다. 이 말을 굳이 하는 건 내가 혼자 여행을 한 적은 없어도 여행을 가서 재미없게 박물관만 다니다가 오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어필하게 위해서다. 나도 여행을 하면 사람도 주체적으로 새로 사귀고 사고도 치고 수 년 뒤에(반드시 수 년이 흘러야만 한다) 맥주 한 잔하면서 친구들과 '야 너가 그때 그랬잖아~! 진짜 재미있었는데!'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비단 해외여행 뿐 아니라 국내여행도 마찬가지이다. 결혼 전 방송작가 동기와 자동차로 전국일주를 한 적이 있다. 그것도 역시나 동기가 제안해서 졸래졸래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여행이 시작되면 기깔나게 놀고 마시고 먹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왜 난 혼자 여행을 못해봤을까. 내가 <우리말나들이>라는 정적인 캠페인을 쓰는 작가라는 걸 알면 사람들이 놀란다.(또는 놀린다?) 당신이 방송작가라고 해서 예능이나 여행작가 느낌으로 알았는데 교양 프로그램 작가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도 가끔 식겁합니다. 저에게 방송국에서 교양을 요구하다니요. 


분위기가 여행작가 같다는 말까지 들어본 내가 올해 새해다짐으로 '혼행'을 선택한다해도 전혀 나답지 않다거나 adventurous(모험을 좋아하는, 대담한)한 것도 아닐 터, 좋다. 올해는 이거다. 


그런데 여전히 코로나 시국이다. 생각할 것도 준비할 것도 많을 거다. 졸래졸래 따라가는 것이 아니니 혼자 해야 할 것도 많을 거고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것은 우리집 어린이를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는 것이다. 어린이를 데려가는 것은 혼행에 포함 안 되는 거 맞죠? 데리고 가고 싶은데... (지난 가을 우리집 어린이와 둘이 부산 여행을 했다. 역시 난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닌 듯)

  

혼행이라고 검색해보니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쏟아진다. 혼행은 모험이거나 도피이거나, 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한국 여행객이 혼행을 가장 선호한다는 재작년 통계도(2019) 눈에 들어오고 '외로움'과 '두려움'이 '혼행'과 자연스레 한 문장에 있는 것도 여겨보게 된다. 40대 여성이 하는 혼행은 20대 여성이, 또는 40대 남성이 하는 혼행과 다를 거다. 40대 엄마가 하는 혼행도 아빠나 할머니가 하는 혼행과 다를 테고, 혼행이 처음인 사람이 하는 여행과 혼행 전문가가 하는 혼행도 다를 거다. 


맛집도 관심이 없고, 여행도 딱히 관심이 없어서 누가 손내밀지 않는 이상 안 움직이는 사람에게 혼행이란 무엇일까. 일단 해보고 다시 얘기하자. 




뱀발 

*국립국어원에서는 'Hashtag'를 '핵심어'로 순화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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