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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Jul 30. 2021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알고보니 오늘은

곧 7살이 되는 아이가 물었다. 아빠는 친구가 없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친구가 많으냐고.


잠시 배경 설명.

나는 평생 한국에서 수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살다가 아이 아빠를 만나는 바람에(?) 결혼 후 영국에 갔고 아이도 거기서 낳고 기르다가 작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아이 눈에는 지난 1년 동안 catch up 하러 다니는 엄마와, 한국에 친구라고는 없는 아빠가 비교될 수 밖에 없었을 거다.


물론 나도 영국에 처음 갔을 땐 친구가 없었을 터. 하지만 워낙 사교적이고 사람을 좋아해 지금은 남편보다 영국에 친구가 더 많다고 감히 주절거린다.     

스마트폰 시계를 보면 다양한 나라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나는 자주 연락하는 친구들이 사는 나라를 저장해두었다. 오늘은 이 친구들을 소개하고 싶어서 브런치를 열었다.


한국 시간으로 늦은 오후가 되면 영국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어제는 아이가 다니던 학교의 친구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 친구의 이름은 엘라인데, 엘라 엄마는 한국에서 우리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케이팝 이야기를 하다가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묻고 자기들도 이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엘라가 전학가는 학교에도 내가 아는 아이가 이미 다니고 있어서 그 둘이 같이 다니는 걸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딸에게 '엘라도 너처럼 학교를 옮길 건데 이니스가 다니는 학교로 옮길 거래.'라고 말해주었다. '이제 엘라랑 이니스랑 학교 친구가 되겠네? 나만 친구가 없어 힝'이라고 답하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애틀란타  모르던 도시인데 동네친구가 결혼이민을 가서 자주 듣게 되었다. LA 못지 않게 한국 사람이 많아서 처음엔 영어를  하지 못하는 상태였던  친구가 살기에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가 올리는 SNS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한국인종인 것도 신기했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살아왔던 나와 전혀 다른 해외생활을 하고 있었다.

난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를 키웠단 말이다


자기  근처에 한국 유치원이 6개가 있는데 모두   차서 자기 아이를 한국 유치원에 보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놀라웠다. 내가  모르는 어느 도시에  친구가 살기 시작하면,  친구의 시선으로 보는 도시 이야기가  시선이 되는 것도 흥미롭다.  주변 친구들에게 영국은  시선으로 보는 이야기로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는 어제 한국 친구들에게 영국의 감자칩에 대해서 설명하였고  친구들에게 영국의 감자칩은 내가 설명한대로 기억에 남을 거니까.


우크라이나의 오데사는 친구에게 처음 들은 도시이다. 나처럼 남편을 따라 살기 시작한 내 친구는 아이 둘을 데리고 런던 우리집에 놀러온 적도 있었다. 오데사의 치즈, 과자 등을 잔뜩 싣고 온 친구와 몇날며칠을 웃으며 울며 지냈는지 모른다. 스무 살, 생애최초 해외여행도 이 친구와 했는데 우리의 첫 나라는 영국이었고 내가 이제 그 나라에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끝에서 끝이더라도 같은 유럽권이라고,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이 친구의 기분을 대충 알 수 있다.


동쪽 끝 우크라이나의 친구가 이러한데, 더 자주 만나던 서쪽 끝 독일 친구의 상실감은 어떠했을까. 자길 두고 떠났다고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욕을 먹는다. 독일 시간은 굳이 저장해두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영국과 1시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저장하지 않아도 외울 수 있다. :) 아까 오데사의 친구와 스무 살에 유럽여행을 했을 때 독일도 함께 들렀는데 이 친구가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독일인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데 내가 영국으로 결혼이민을 간다고 했을 때, 내가 한국으로 역이민을 간다고 했을 때 이 친구의 반응이 가장 드라마틱했다.


싱가포르 시간은 한국과 1시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이제 폰에서 지워도 될 것 같지만 이거라도 있어야 연락을 한번 더 하게 되는 것도 있다. 이 친구는 런던에서 만난 친구인데 영국인 남편이 싱가포르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해서 이사를 갔다. 영국에서 많은 언니들과 동생들은 만나왔지만 마음이 맞는 동갑은 거의 보지 못해서 이 친구의 존재가 내겐 참 소중했다. 싱가포르에 언제 놀러올 거냐고 열 번은 물어본 거 같은데 이제 내가 한국으로 왔으니 더 가깝긴 하지만 여전히 해외 방문은 코로나 이후로 미뤄야 하니까...  


키프로스의 니코시아에 있는 친구는 지금 언급한 친구들 중에 유일한 남자이다. 원래 러시아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민을 가고 프랑스와 그리스,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영국이 바로 내 나라구나, 라고 느껴 결국 현재 국적은 영국인인 친구. 김연아를 보겠다며 평창올림픽에 혼자 가고, 나에게 한국어 과외를 해달라며 부탁하고, 결국 TOPIK 한국어능력시험까지 통과한 친구. 아이를 낳고 영국 병원에서 제공하는 시리얼을 먹고 있다고 하니 한국 식당에 가서 한식을 사다주는 친구.


https://www.un.org/en/observances/friendship-day

알고보니 오늘은 유엔이 정한 '우정의 날'이라고 한다. 왜 오늘따라 친구 얘기가 하고 싶었는지 알겠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친구의 집은 어디인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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