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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Jun 15. 2021

K 오지라퍼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 앞서 걸어가는 초등 고학년 여아들이 눈에 띈다. 한 아이가 예쁜 청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등에 메고 있던 책가방 때문에 치마가 걸려 올라가 있었다. 나는 원래 오지랖이 넓지 않은 편이지만 내가 늘 신경쓰고 있는 부분에 대해선 오지랖이 유라시아 대륙만해지는 경향이 있다. 


"얘, 잠깐만. 네 치마를 한번 볼래?"


그냥 툭 튀어나온 말처럼 보여도 어벤저스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머릿속으로 백만번 돌려보고 한 대사이다. 


급한 마음에 '치마 좀 내려'라고 말하면 듣는 아이가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고 (내가 어릴 때 그렇게 느끼기도 했고), 원래 그렇게 입는 게 혹시 내가 알 수 없는 요즘 아이들의 최신유행일 수도 있으니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 여기에 더 심하면 그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먼저 뻗어 치마를 고쳐 입혀주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자식들에게 하듯. 


다행히 같이 걷고 있던 다른 아이가 '어? 너 치마 좀 올라간 거 같아.'라고 말하기에 '그냥 치마 밑을 잡고 아래로 죽 당기면 될 것 같아.'라고 한마디 추가하고 더 쳐다보지 않고 앞으로 총총 앞서 걸어갔다. 그러자 이번엔 내 손을 잡고 있던 딸이 말을 보탠다. 


"엄마, 왜 모르는 아이들한테 말을 걸었어?"


아이에게 한 말 :

어, 원래 모르는 사람과는(Stranger) 이야기를 하면 안 되지만 저 언니가 모르고 걷다가 나중에 더 창피해할까봐 그냥 했어. 


속으로 생각한 말 : 

저러다가 뒤에서 어떤 미친새끼들이 사진 찍으면 어떻게 해. 




내가 어리던 8-90년대에는 동네가 다 함께 아이를 키웠다. 지금은 공동육아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모집하여 같이 체험도 다니고 정보도 나누고 하지만 라떼의 그것과는 성질이 다를 것이다. 라떼는 모르는 사람들도 오지라파워로 남의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혼내고, 에쁘다고 머리를 만지고, 먹을 것을 나눠 주고 그랬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때 그 버릇이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수두룩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친정 엄마가 그러하시다. 계곡과 붙어있는 카페를 갔을 때 이야기다. 손녀와 함께 물고기를 잡는다며 계곡물에 발 벗고 서 있던 엄마가 갑자기 옆에 서 있는 전혀 모르는 남자 아이의 팔을 치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그 아이의 팔에 모기가 붙었고 그걸 보자마자 친정 엄마는 팔을 때려 모기를 잡았던 것이다. 


커피를 마시던 자리로 다시 돌아온 엄마는 그 아이의 엄마를 찾아서 말을 걸었다. 


"혹시 내가 아까 아이를 때리는 것처럼 보여서 놀랐을까봐 말씀드려요, 모기가 붙어가지고 나도 모르게 손이 갔네.." 


다행히 그 아이의 어머니는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 '어머 아니예요'하고 넘어갔지만 만약 엄청나게 예민한 엄마였다면? 나는 친정 엄마에게 그 자리에서 잔소리를 퍼부었다. 


"엄마!! 남의 아이가 모기에 물리든가 말든가, 말라리아에 걸리든가 말든가, 그냥 놔둬 좀!!!"


나였어도 내 딸의 팔에 붙은 모기를 본능적으로 때려 잡은, 모르는 할머니 일은 그냥 넘어갔겠지만 다 나 같은 건 아니니까.  





6-7년 전에 한국에 아이를 처음으로 데리고 왔을 때 일이다. 빵집에서 5개월 된 딸에게 이유식을 먹이면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 계셨던 모르는 할머니의 손 하나가 날아와 내 손등을 찰싹 때렸다. 그리고 재생된 오디오는 다음과 같다. 


"계모야? 뭔 이유식을 그렇게 급하게 줘?? 한 숟가락 먹이고, 5분 쉬고. 한 숟가락 먹이고 쉬고 해야지!"


나는 기분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었다. 맞는 말씀이지만 맞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과 말이었을 거다. 




아기를 낳고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하기 위해 탄 비행기 안. 아직 한국 땅을 밟지도 않았는데 이미 자국비행기를 탄 순간 한국이구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저출산 때문에 아기를 보기가 힘들어서였을까, 배시넷에 누워있는 아기에게 이러쿵저러쿵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어머 아기네? 어머 무슨 아기가 이렇게 얌전히 잠만 자? 에고 예쁘게 생겼네 아기랑 관광하고 집에 가는 거야? 


그때 나는 사실 눈물을 흘렸다. 비행기의 백색소음 덕에 내가 훌쩍거리며 우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영국에 살 때는 한국어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기에 대한 관심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Gorgeous! Lovely! Bless her!라고 해봤자 내 언어가 아니라서 그런지 영혼없는 Thank you만 날렸던 것이다. 그런데 K할매들이 아기가 예쁘다고 해주니 그냥 눈물이 마구 났던 것이다. 


물론 이 분위기 그대로 착륙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면 또 K할매가 아니다. 계속된 질문에 나는 영국에 살고 있으며 그래서 아기를 영국에서 낳았고 지금은 할머니를 보러 처음 한국에 가는 거라고 말하자 K할매는 '아, 국산이 아니야?'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오늘 내 오지랖이 그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겠다. 어떤 미친새끼에게 사진은 찍히지 않았더라도 어떤 아줌마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그 아이가 이불킥을 할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치마를 입을 땐 속바지를 입어야겠다고 다짐했을 수도 있고, 오늘 일로 다시는 치마를 입지 않겠다며 톰보이가 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또는 벌써 다 잊어버리고 다시 만나도 '누구세요?' 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마 같은 일이 또 내 앞에서 일어나도 똑같은 오지랖을 펼칠 거다. 옆 테이블 초보엄마가 이유식을 푹푹 퍼먹이든 말든, 내 옆에 서 있는 남자 아이의 팔에 모기가 들러붙든 말든 상관없어할 거지만 여자 아이의 치마가 가방에 끼어 올라가 있는 꼴은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뱀발 :

오지랖은 [오지라픈] 이라고 발음한다. [오지라븐]이 아니다. 오지라퍼라고 할 때는 'ㅍ'을 잘 살려 쓰면서 '오지랖이[라피]'는 [라비]라고 잘못 발음하는 일이 잦다. 

'오지랖'은 원래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하는 말로 '오지랖을 여미다', '오지랖을 걷고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처럼 쓰인다. 그런데 그 뜻이 확장되어 '오지랖이 넓다'는 건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면이 있다'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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