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3살인데 나는 왜때문에 벌써 학부모지...?
나는 유치원 때 개나리반이었다가 진달래반이었다가 그랬다. 두 반의 차이는 지금 그 유치원이 사라져서 물어볼 데가 없어 확실하지 않지만 그냥 1학기와 2학기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2층짜리 #서초동세종유치원 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아파트가 들어섰다. 영국엔 개나리도 없고 진달래도 없다. 있어도 다른 종자, 다른 이름일 거다. 심지어 우리가 철쭉이라고 부르는 식물은 외래종이므로 고유 식물을 지키기 위해서 발견 즉시 다 뽑아버리라는 캠페인도 봤다.
맘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남편이 이제나 저제나 주재원 한 번 안 가나, 기다리며 사는 사람도 아니었고 아이를 낳게 될 것도 몰랐고 아이를 해외에서 낳게 될 것도 몰랐고 아이를 해외에서 키우게 될 것도 몰랐다. 아이를 정말 원하는 부부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고 원하지 않는 부부에게는 자꾸만 주는 신의 심술처럼 해외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길에 밟히는데 왜 내가 여기 와가지고는 매일매일 눈치 전쟁인지..
본격적으로 등교를 시작하기 몇 주 전에 familiarisation day(한국어로 굳이 말하자면 예비소집일이라고 하면 비슷할까?)가 있었다. 아이들이 교실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미리 와서 다른 아이들과 놀게 하는 날이자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도 처음으로 보게 되는 날이다. 나는 영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이 학교에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람도 없었다. (칠공주 엄마들은 모두 공립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언어는 생존어, 생활어, 예술가어로 구분된다는 말이 있는데 한국에서 작가로 일하면서 예술가어 쓰던 '나'의 영어는 완전히 생존어 수준에다가 이날 내가 이미지를 한 번 망치면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아이와 나의 슬기로운 학교 생활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 짓을 또 해야하다니.. 3년 전에 칠공주를 시작하면서 이미 다 한 건데..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이라고 답하고 그러면 강남스타일 얘기 나올 거고, 말춤은 못 추더라도 흉내라도 내야 하고, 아이는 어디서 낳았는지 왜 영국에 사는지 등등등 all over again.
칠공주를 섭외하던 자신감은 어디로 가고 예비소집일 당일에 특히나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던 자신감은 3줄짜리 진주 목걸이와 남편이 사귈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준 명품 가방을 메는 걸로 채웠다. 옆에서 보던 남편은 무슨 파티에 가느냐며 놀리기 바빴다. 너는 영어도 잘하고 사립학교도 다녀봤으니까 그러지, 나는 보여줄 게 아무 것도 없단 말이다...
다행히 아이는 교실에 빠르게 적응했고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놀았다. 나만 잘하면 되는 거였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모여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말도 하지 않고 한옆에 가만히 있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다른 영국 엄마들이 하는 대화를 알아듣는 척 추임새도 넣고 눈빛도 교환하고 웃기도 하고 아주 바빴다. 그러다가 바로 옆에 앉아있던 미국인 엄마가 1:1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 매우 고마워!!!!!)
테디 엄마, 조세핀이었다. 테디의 누나는 이미 같은 사립학교를 다니는 중이었고 테디가 같은 반 아이들 중에 어린 축에 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말을 꺼냈다. 자신감이 넘치다못해 남들에게 나누어주기 바빴는데 그 와중에도 프랑스어를 영어만큼 하고 런던의 한 방송 프로덕션의 간부 임을 밝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나도 방송계에 있다고, 간부도 아니고 런던도 아니지만 한국의 여러 방송사와 일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반가워하며 한국에 출장을 다녀온 적도 있다고, 화장실마다 비데가 있는 환상적인 곳에서 살다가 어떻게 이런 후진 곳에서 살 수 있냐고 농담을 했다.
살았다. 이날 나는 테디 엄마를 득템하였다. 테디 엄마의 초대로 이 사립학교 너서리 아이들의 단체 채팅방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다수의 승인을 받지 못해(?) 그 채팅방에 못 들어오고 있는 엄마들도 있다. 승인이라는 건 별 게 아니고 실제로 다른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만난 적이 있어야 할 텐데 모임마다, 만남마다 나타나지 않으면서 채팅방에는 들어오고 싶어하는 엄마들은 아직 들어오지 못했다.
이날 파티가냐고 놀렸던 남편에게는 민망했지만 그래도 엄청 꾸미고 갔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른 엄마들이 말을 걸어와서가 아니라 이날 학교에서 내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주양육자의 사진을 교실에 걸어놓고 얼굴 대조를 하는 모양이었다. 실수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를 내어줘서는 안 될 테니까. 휘유.. 화장을 하고 가서 너무너무 다행이다. 흐.
아이가 너서리(nursery)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났다.
아이가 첫 번째 초대장을 받아왔다. 학교는 혼자 다니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있을 거고, 친구들과 같이 놀고 다투고 먹고 배우고 할 것이다. 아직 다닌 지 몇 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초대장을 받아왔다는 건 좋은 징조다. 내가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아이를 초대했다는 것! 기분 좋은 일이다.
초대장을 받아온 날은 남편이 아이를 픽업했다.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픽업을 했고 아이 가방에 초대장이 들어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집까지 온전하게 걸어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말했다.
- 테디에게 뭘 받아왔어. 테디랑 음.. 걔 누나 이름이 뭐더라? 암튼 걔네가 뭐 하나봐.
아니, 나에게는 엄청난 사건인데 도대체 왜 그리 담담하게 말하는 건데? 그가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는데 (그리고 뭘 하는지 기억도 못하는데) 내가 쪼르르 달려가서 초대장을 보기는 싫었다.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아, 그래? 이따가 볼게.’라고 말하고 아까 하던 일을 마저 정리하는 척 시간을 썼다. 그러다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오줌 마려운 사람이 화장실로 달려가듯이 냉장고 앞으로 돌진해 남편이 자석으로 눌러놓은 호박 모양의 초대장을 찬찬히 읽었다.
JOIN THIS OCTOBER 31ST
FOR A HALLOWEEN BASH
BE THERE IF YOU DARE
궁서체를 영어로 타이프하면 이런 느낌일까. 하필이면 모두 대문자로 쓰여 있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 아이의 첫 번째 초대장. 그동안 절친한 칠공주의 여러 파티에는 초대를 받아왔지만 학교 친구의 초대는 처음이었다. 다음 달에 있을 핼러윈 파티였다. 초대장 뒤에는 테디 누나가 쓴 것으로 생각되는 아이의 이름이 연필로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앞면 영어버전 궁서체(?)에서 받은 강렬한 충격을 뒷면의 손글씨가 조금 완화시켜주었다.
얼른 답장을 하고 싶었다. 어! 어! 꼭 갈게! 초대해줘서 너무 고마워! 라고 가슴이 이야기했지만 아이가 하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것부터 처리하는 엄마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다. 잘못하다가는 초대 못 받고 죽은 귀신이 달라붙은 아이로 분장해야 할 판이었다. 뭐 선착순 파티도 아니니까 천천히 해도 될 거야. 답장은 내일, 아니야 반드시 내일 할 필요도 없어. 이미 머릿속으로는 참석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영작하면 촌스럽지 않으면서도 절박해보이지 않게 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당장 답장을 하지는 않았다.
그때 문자가 왔다. 테디 엄마였다.
- 아이 가방 안에 있는 카드 봤어? 선생님한테 가방 안에 넣어달라고 말해놨었는데..
촌스럽고 절박했던 건 오히려 그녀였을까. 가방에 카드가 제대로 들어있었던 건지 걱정했던 것 같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답장할 기회였다!
- 응. 초대 고마워. 참석할게!
테디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번의 기회밖에 없는 영어 듣기 평가를 수행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집중했었다. 지금 이 엄마와 친해지는데 실패한다면 난 이번 학기 아니면 다음 학기까지도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할 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큰 아이가 있었는데도 무엇이 그렇게 긴장이었는지 새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작은 아이에게 친구를 미리 만들어주려고 애쓰고 있는 터였다. 학기 시작 전에 테디는 우리 아이와 이미 두 번이나 미리 만나서 플레이데이트를 했다. 어디서 뭘 하자고 의견을 내는 쪽은 늘 테디 엄마였다. 아마도 테디가 아이들 중에 어린 쪽에 속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우리 아이는 가장 나이가 많은 쪽에 속해서 내가 하지 않는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엄마들 중에 아마도 가장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지만 아이가 첫 등교하는 날 눈물을 보인 엄마도 바로 테디 엄마였다. 난 안 울었다.
- Good! 테디가 너희 아이는 꼭 초대하고 싶다고 했거든.
여기선 울었다. 개나리반도 진달래반도 없는 이 낯선 환경에서 친정 엄마가 준 진주 목걸이 동앗줄에 매달려 겨우겨우 살고 있는 지 엄마와는 달리 우리 아이는 잘하고 있구나. 같이 놀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고 참 다행이다,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이날 저녁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도 늦게 잤다. 한국에서 왔다고 할 때마다 북한인지 남한인지는 몰라도 강남스타일은 알던 사람들에게 어 사실 내 고향이야, 거기 살다가 왔어 라고 살짝 어깨 펴고 말춤 흉내내던 옛날의 나는 이제, 요즘 전세계아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핑크퐁 버전 베이비샤크(Baby Shark) 말이야.. 그것도 한국 회사에서 만든 노래라고, 어깨를 조금 더 펴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달 뒤 받은 또 다른 친구의 생일 파티 초대장에는 '아기 상어'가 파티의 주제라고 쓰여 있었다. 신 난다. 뚜뚜뚜 신 난다. 뚜뚜뚜 고민 끝,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