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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Mar 08. 2022

114주년 여성의 날 아침 일기

International Women's Day

지난 주에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여자 아이를 혼자 돌보는 엄마인 나. 

아침 알람소리에 아이보다 먼저 일어나 자가진단앱을 흐릿한 눈으로 켜고 

우리 아이가 지금 확진자이거나 격리 중이 아님을 담임에게 알려 

등교할 수 있는 상태임을 보고한다. 

아이가 지난 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하며 웅얼웅얼 일어나기 시작하면 

쪼르르 부엌으로 가서 

식빵 위에 굽지 않아도 되는 햄을 척, 얹어 접시에 놓는다. 

아이의 기분에 따라 시리얼과 우유일 때도 있고 

흰 밥에 까만 김일 때도 있다. 


어제 저녁에 아이가 갑자기 앞머리를 잘라 달라고 해서 

색종이를 자르던 가위로 송당 잘랐는데 

비뚤배뚤 파도가 치는 앞머리이지만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같다며 좋아한다. (25,21)

아직 앞머리는 무조건 일자로 반듯이 잘라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없는 아이이다.  


아이는 머리가 비뚤배뚤해서가 아니라

어제와 달라진 머리 스타일 때문에 아이들이 알아볼 거라며

부끄러워하면서 학교를 갔고 

나는 어제 쓰다 만 원고를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자 오늘이 여성의 날이란다. 

이건 못 참지. 오늘이 나의 날이라는데.  





물려받은 전래동화 속 여자들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이 전집을 다 갖다버려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방귀를 뀌었다고 집에서 쫓겨나는 며느리가 있질 않나 

눈 먼 아비 눈을 뜨게 해준다는 미친놈의 말을 듣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 여자 아이가 있질 않나

선비고 머슴이고 사또고 뭐고 

온갖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예쁜 아내를 얻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또 뭔가.

예쁜 아내는 그동안 어디서 뭐했는데?

물론 다 전래동화 이야기다. 요즘 그림책들은 안 그런 책이 더 많다. 


이쯤에서 에라이, 또 그 얘기냐, 글을 닫아버리는 남성 구독자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있어.  

여기서 나쁜 사람은 누구야?" 


- 가만히 있는 사람 


그렇다.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가만히 있었던 사람이 나쁜 거다.  


우리 남자들이 투표를 해봅시다! 라고 말하는 자리에서 

여자는요? 라고 말하지 않은 사람들 


저 여자분과 남자인 저는 

똑같은 일을 하는데 

왜 제가 더 많이 받죠? 라고 묻지 않는 사람들 


저 남자분과 여자인 저는 

똑같은 일을 하는데 

왜 제가 덜 받죠? 

아 저 분은 남자라서 그렇구나, 라며 가만히 있는 사람들. 


우리 모두는 남자 VS 여자 가 아니라 

가만히 있는 사람 VS 가만히 있지 않은 사람 으로 맞서야 하는 거 아닌가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할 말이 궁금하다. 

비뚤배뚤한 앞머리를 보며 알파세대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1) 야 너 앞머리 왜 그래? 푸하하

2) 너 앞머리 멋있다 

3) 관심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가장 나쁜 사람은?



정답 4)

- '야 너 앞머리 왜 그래? 푸하하'라고 놀리는 아이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아이 



내 눈엔 이렇게 보이긴 하다만.. 패완얼


오늘도 편견에 맞서 싸우는 남자 여자 LGBTQ 모두 힘내자. 

아침에 국 끓일 필요 없고 

앞머리가 일 자일 필요도 없고

브런치 글의 결론이 꼭 멋있어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  





뱀발

며칠 전에 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가 '선생님 살색 크레파스가 없어요'라고 말해서 우리 아이가 그 친구에게 '야 살색이 아니라 살구색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행동하고 말하는 우리 아이의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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