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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Feb 23. 2022

도서관에서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을 읽고

집에서 478m. 접근성이 훌륭한 도서관이 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아직 열지도 않은 도서관 앞에 줄을 서서 (나 말고도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10명 정도는 꼭 있었다. 이 동네의 미래가 밝다) 기다리고 있으면 아침 9시에 문을 터억 열어준다. 열체크와 QR체크인을 하고 나서 들어가면 내 생활비로는 도저히 사서 읽을 수 없는 여러 책들을 꾸역꾸역 눈에 넣고 뇌에 박았다. 코로나 이후로, 앉아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서 무릎이 부서져라 서서 읽었다. 너무 두꺼운 건 빌려서 읽었지만 주로 아이를 위해 어린이책을 빌리다보니 내가 간단히 읽고 싶은 책은 서서 읽는 수밖에.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이 소중한 도서관이 10억짜리 리모델링을 한다고 문을 닫아버렸고 아직도 닫힌 상태이다. 대신 막판에 책을 잔뜩 빌릴 수 있게 해주었고 또 반납도 리모델링이 끝나면 해도 된다고 해서 사실상 산 것과 다름없는 느낌을 받았다. 2주 안에 (반납연기 찬스를 쓰면 3주 안에) 2권짜리 두꺼운 장편소설을 읽어야했는데 리모델링 찬스로 몇 개월을 번 것이다. 그래도 읽을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는 프리랜서/워킹맘/반싱글맘인지라 그때 빌린 <무슬림의 장례>를 겨우겨우 읽어냈다. 자주 끊어 읽긴 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2권짜리 두꺼운 장편소설을 끝내고 나니 갑자기 그 무게가 집에 있다는 것이 짐처럼 느껴졌다. 얼른 반납하고 싶었다. 괜히 가지고 있다가 커피라도 쏟을까 불안했다. 같은 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른 구립도서관에 반납이 가능하다는 걸 알아서 검색을 해보았다.  


2.3km 거리에 못 보던 도서관 정보가 있었다. 작년 10월에 새로 연 곳이라고 한다. 오! 난 탄성을 질렀다. 역사로 먹고 사는 나라인 영국에 오래 살고 나서 생긴 특징이 있다면 '새로운 것'에 환장하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 어쩌고, 로마 시대 어쩌고에 진절머리가 났다. 어디에 새로 뭐가 생겼다고 하면 우와! 하면서 가보곤 했다. 현대적인 것이 보고 싶어서. 그때 그 마음으로 새집증후군을 기대하며 새 도서관에 가보았다.


리모델링하는 도서관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이 많지 않았다. 원래 많지 않은 건지, 이미 사람들이 싹 다 빌려간 건지는 모르겠다. 대신 남아 있는 모든 책들이 다 새 것이었다.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영수증이 책 속에 끼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책들도 다 한번도 열어보지 않은 것 같은 상태였다. 우와! 오!


그렇게 새책을 읽는 기쁨을 빌린 책에서 누리며 2주에 한번씩 도서관에 방문했다. 이 새 도서관이 주는 유일한 단점은 집에서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건데, 친정엄마와 함께 쓰는 차가 매일 집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무거운 책을 들고 버스를 타거나, 엄마가 차를 쓰지 않는 날을 반납일과 동기화하거나, 주말에 남편이 멀리서 오면 눈치를 보며 데려다달라고 해야했다. 세 가지 옵션 다 마음이든 몸이든 불편하다.  


그러다가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공공장소로의 외출을 삼갔고 한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전자책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에잇 난 old fashioned야 도저히 못 읽겠다며 손을 놓았다. 집에 있는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가도 에잇..안 읽은 거 읽고 싶네.. 하며 나의 ENFP성향이 계속 내 몸을 두드려대어서 결국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가니 이젠 QR체크인도 안해도 된단다. 집에만 있었더니 세상이 또 변했구나.


주정뱅이가 오랜 재활을 마치고 치료센터를 나오자마자 펍으로 향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첫 잔을 파인트로 시키고 그 부드러운 거품에 건조한 입술을 대는 것처럼 책을 꺼내 첫장을 펼쳤다. 그렇게 고팠던 문장들이 텅빈 내 혈관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시원해. 첫 잔을 끝내고 두 잔, 석 잔.. 내가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마시던 책 중에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이 있었다. 브런치에서 구독하고 있는 작가이지만 책을 읽은 건 처음이었다. 사실 이 분과 나는 같은 곳에서 돈을 받고 있는 처지이지만 만난 적은 없다.


내게 그 일은 2007년 회식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쯤 되면 이 회사의 회식 자리는 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꼭 여기라서가 아니라 모든 회식자리가 그렇다는 건 여자라면 다 알 거다.

이 분은 정직원이니까, 작가가 아니라 피디니까, 든든한 남편이 옆에 붙어 있으니까, 진짜 개짜증났겠지만 그래도 좋겠다, 부럽다, 하며 이 책의 #미투 페이지를 읽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이분이 입사하기 1년 전에 내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그 뒤에 이분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닌가 자책했다. 변명타임. 난 직원이 아니었다. 피디도 아니었다. 작가는 언제든지 잘릴 수 있었고 역시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실수가 일어났고 개편날짜가 되자 그는 나부터 쳐냈다. (아직도 그걸 실수라고 말해주는 내 처지가 하찮다) 나는 너와 함께 가기를 원하는데 위에서 바꾸라고 한다, 라는 말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게 내 정신상태에 좋으니까.


15년이 지나서야  얘기를 공개적으로 처음 해본다. 숨긴  아닌데 (목격자가 있어서 숨겨질 일도 아니었다) 워낙  인생에 다른 큰일들이 많아서 이런 실수(?) 따위는 예선에 오르지도 못한다. 처음 꺼내는 이야기라서 후련하다거나 이제는 말할  있다는  아니다. 15년이 지나서야  책의 #미투 페이지를 읽고 안심이 된달까. 그동안 #미투 운동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낀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는가.  수많은 이야기에도 입을 닫고 있었던 나인데, 같은 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니 무지막지하게 공감을 때릴 수밖에 없다. 이런 분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그때 가만히 있었지만 다음 해에 여봐란듯이 이런 분이 나타나줘서 다행이다, 이런 분이 들어와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며  잔을 내려놨다. 막잔이 아주 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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