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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gie Oct 15. 2015

나는 왜 귀신이 무서운 걸까?

내면의 불안


밤에 방의 형광등을 끄고 침대에 바르게 누워
잠이 들기 전 스마트폰을 들춰 보고 있으면,
어둠에 둔감해진 내 눈이 닿지 않는 공간들이
조금씩 공포로 다가온다.
보통 날은 가까스로 신경을 꺼서
그것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날은 내 시각이 닿지 않는 공간이
야금야금 내 의식을 잠식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들고 있던 스마트폰 불빛을 비추고
구석구석을 살피지만
다시 빛을 거두면 여전히 제자리인 어둠은
되려 나를 더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나는 다 큰 어른이다(물론 아직 어리긴 하지만). 그런데 아직 귀신이 무섭다. 딱히 귀신이나 영적인 존재를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눈을 감고 머리를 감을 때 가끔 귀신이 나를 보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샴푸 거품을 걷어내고 눈을 애써 떠보고 최대한 내가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을 줄이려 머리의 거품을 재빨리 걷어낸다.


정신 상담사나 심리학자가 내 상태를 진단한다고

상상해봤을 때, 나는 기본적으로 마음에 불안이 있는 것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해석을 많이 봤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떻게 보면 일부러 불안감을 느끼고 매사에 긴장한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한다.


나는 사실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방법을 알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우리 집의 막내로서 가족 모두의 사랑과 예쁨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군가 나를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게 익숙하고, 또 그럴 때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애정을 받고 나를 보살펴주게 만들려면 내가 그 사람 마음에 들어야 한다. 어딘가 서툴러 보호 본능을 일으키든 그 사람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든 말이다.



언젠가 나는 스스로가 남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항상 그들의 기준에 맞춰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내 삶과 행동의 기준이 만나는 사람마다 바뀌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그렇게 하면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흐려질뿐더러 심한 경우 다중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단 하나의 확립된 정의를 갖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나는 단 하나의 뚜렷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커트 코베인, 너바나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be loved for who I'm not.(Kurt Cobain, nirvana)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기 보다는 나인 것으로 미움 받겠다.(커트 코베인, 너바나)


혼자만의 명확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여전히 나는 어리석게도 어린 날의 안정감과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 그립다. 어릴 때는 내가 대하는 모두가 나를 좋아하기를 바랐고, 나도 노력했고,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밝고 긍정적이었고 공부든 운동이든 하는 일마다 잘 해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은 상대적으로 많이 불안하다. 남들이 정말 나를 싫어할 수도 있고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 있다. 억지로라도 자꾸 스스로에게 누군가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각인시키려 한다. 나 자신이 남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서이다. 어쩌면 내 마음의 불안이 남들의 시선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노력하는 방향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으려는 내 생각이 결국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으로 자신을 바꿔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뚜렷한 하나의 정체성보다는 조금 기준이 모호하더라도 모두에게 호의적이고 기분 좋은 성격이 더 나은 게 아닐까. 그렇다면  수년 간 나의 정체성을 위한 노력이 사실은 스스로를 좋지 않은 성격으로 바꾸는 일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이 찝찝한 물음이 명쾌한 해답을 얻을 때까지 나는 여전히 귀신을 무서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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