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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gie Oct 19. 2015

글을 쓰는 게 두렵다.

쉬운 글에 대한 강박

고등학교 때 수시 준비를 하면서 선생님들께 논술 첨삭 지도를 받을 때가 있었다. 자주 들었던 말이 왜 이렇게 글을 어렵게 쓰냐는 것.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일단 글을 읽는 사람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기 쉽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재차 내 글을 봐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없었고 따라서 고칠 게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써서 선생님들이 글이 어렵다고 여기신 것 같다. 나는 말을 풀어 쓰기 보다는 단어 하나로 함축하곤 했다. 그러면 글자 제한이 있는 논술에서 보다 많은 생각들을 써내릴 수 있기도 했고, 굳이 풀어 쓰는 게 더 가독성을 높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끝까지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을 고집했던 나는 지도를 받을 때마다 글 참 못 쓴다는 핀잔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까지도 글을 쓰는 데 자신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독자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 채로 나 혼자 떠들어대는 게 두려워서 선생님들의 조언대로 쉽게 쓰려고 늘 애쓴다. 내가 어려운 표현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이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지는 않을지. 그래서 생각이 떠오른 대로 술술 글로 옮기는 일이 내게는 어렵다. 이 긴장을 놓다 보면 어느샌가 어려운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쯤은 의식이 흐르는 대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독자가 못 알아듣거나 구독자가 구독을 취소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어쨌든 나도 '쉬운 글'의 강박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말 그대로,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자신의 견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쉬운 글이 아니라 내 생각을 가장 잘 전달하는 글이다. 어려운 단어가 들어갈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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