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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gie Oct 20. 2015

너 그렇게 살지 마

'내가 뭘.'

너 그렇게 살지마.


몇 시간 전에 엄마한테 들은 말이다. 엄마는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일을 아침 4시간 동안 하신다. 그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내게 마늘을 까거나 설거지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쉬고 있는데 쉬지 못하는 나 자신을  안쓰러워하며, 끝나지 않는 고민을 곰곰이 씹으면서 시킨 일들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딱히 급한 일도  아닐뿐더러, 자기가 힘들고 짜증 난다고 가만히 있는 나에게 괜히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아니꼬워서다.


내가 저런 말을 들을 정도로 흥청망청 산 것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아서 엄마 아빠가 늘 돈 걱정에 시달리는 걸 알아서 공부하거나 놀 때도 늘 돈이 어떻게 하면 덜 들까 고민하면서 살았는데. 열세  살쯤 막 사춘기가 시작될 때, 여자애들이랑 어울리는 게 너무 즐거워서 계속 놀고 싶다가도 그 어린 나이에 내 미래를 위해서 애써 여자친구도 안 만들고 귀여운 여자애들도 멀리했는데. 결국 저런 말 들을 거였으면 이렇게 힘들게 버텨낼 필요는 없던 걸까.


솔직히 가끔 부모님이나 누나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도 사실 내 마음은 별로 상처 입는 일이 없다. 저 사람들은 내가 어떤 노력을 남 몰래 했든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기분에 따라 어떻게든 분노를 토해내려 할 뿐이니까. 그 말들은 내 것이 아닌 자신들의 것이니까. 그래도 더러워지는 기분과 조금 격렬해지는 심장 박동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만큼 나이 먹었으면!


사춘기 때 이따금씩 어른 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무언가 성인으로 인정받는 느낌에 기분이 좋다가도 겉모습뿐인 어른이 되기 싫어서 어른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 했다. '어른 같은' 게 아니라 진정한 어른이 될 때까지 스스로를 안일하게 하는 평가들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던 거다. 그렇게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기쁜 느낌조차 거부했던 나인데, 나이는 먹었으면서 철이 안 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모르겠다. 당신이 말하는 어른이라는 건 그 자체로 성숙하고 현명한 인격체가 아닌, 그저 경제활동을 하고 당신 말 잘 듣는 강아지를 말하는 걸지도.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엄마는 자신이 힘들게 일하고 와서 집안일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도와준다는 말 한마디 없다는 게 너무 서운하신 것 같다. 맞다. 내가 생각해도 요즘 난 너무 피가 차가운 것 같다. 어릴 땐 자주 엄마가 안쓰럽다고 생각하고 엄마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때마다 엄마가 집안일 대신 공부하는 게 자기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해서 그나마 내가 엄마를 도와준다고 하는 건 엄마의 힘든 하루의 푸념을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거나 그저 엄마의 보이지 않는 노고를 속으로 인정해주는 것.


그런데 중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면서 공부를 하기 싫은 마음과 엄마가 안쓰럽다는 마음이 섞이면서 조금 이상한 행동을 낳았다. 공부를 하다가도 엄마나 아빠가 너무 안쓰럽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눈물이 나면서 그 눈물과 슬픈 감정은 멈출 줄을 몰랐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심리학적으로 이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날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에 대한 안쓰러움은 내가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됐다.


그렇다. 나는 공부하기 위해서, 더 집중해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했다. 어쨌든 내가 공부를 좀 더 잘하는 게 부모님이 원하시는 거였고, 날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어쩌면 그게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공부에 집중하다가도 슬픈 감정이 들면 그 감정을 억누르고 풍선처럼 다시 커지려고 하면 그 풍선이 터질 듯 누르고, 어쩌면 나는 공부하는 시간에 스스로와 싸운 시간이 더 많았다.


반복된 자신과의 싸움에 나는 지칠 대로 지쳤고, 언젠가부터는 엄마의 푸념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진이 빠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항상 힘들어 보이는 나에게 가족들은 고민을 털어놓으라고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해버리면, 나를 끔찍이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는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할 게 뻔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님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런 내가 너무 답답했다. 힘들면 그 원인을 해결하면 되는데, 말하지 않는 내가 서운하기도 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힘들어 보일 때마다 부모님은 내가 너무 엄살을 피운다고, 정말 힘든 걸 몰라서 저런다고 나를 깎아내렸다. 어쩌면 내가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다면 이런 자극을 받았을 때 자신이 왜 힘든지를 얘기할 거라는 생각에 더 강하게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참을 수 없어도 참아야 했다.


여전히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마지막에 남은 건 내 힘겨운 싸움과 그 과정에서의 고통이, 어쩌면 그들을 위한 내 노력이 그들에게 직접 무시당했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였다. 그들의 의도가 애초에 어찌하였든, 결국에 나는 그들에 의해서 의지가 박약하고 피해망상으로 점철된 나약한 존재로 추락했다. 아마  그때부터, 남들을 위한 나의 행동이 꼭 보상받는 것은 아니구나, 그리고 어쩔 땐 고운 말이 추한 말로 되받아 돌아올 수도 있는 거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왜 스스로를 좀먹혀 가면서까지 남들을 위해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남들을 도왔지만, 돌아오는 건 진심으로 돕지 않는 나에 대한 남들의 타박과 솔직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실망뿐이었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왜 도와야 하는지 스스로가 잘 모른다면 그 도움은 남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의 단서가 된다. 나는 결심했다. 도와야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애써 도우려 하지 않겠다고. 돕지 않든 돕든 결과는 남들의 비난일 테니까.


얘기가 길어졌지만 내가 엄마의 힘든 표정과 힘든 신음에 동요하지 않는 건, 그것에 동정심을 갖거나 엄마의 말처럼 '돕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은 결코 나를 위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 때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가 해준 건, 그 의도가 어찌됐든 무시와 멸시, 그리고 타박이었다. 나한테 그랬으면서! 나에게 자신이 하지 않은 선행을 바란다는 건 너무 욕심이 지나친 게 아닌가. 그렇게 당했는데도 당신의 노고가 쓸 데 없는 일이 아니고, 남들과 비교하기 전에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주는 거 자체가 이미 내가 당신보다 더 낫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닌가.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많은 물음을 던지지만, 나는 감히 당당히 말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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