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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gie Apr 14. 2016

고인 물

학교는 2년째 휴학 중, 보컬 학원은 다니다 말았고, 알바도 안 한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꼭 무언갈 해야 유익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공부의 가치, 배움의 가치, 아르바이트의 가치. 사람들은 저마다 그것들의 좋은 의미를 늘어놓지만, 현실은 그저 심심하고 단조롭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면 나도 큰 물결에 떠밀려갈 수밖에 없다. 군대를 가고, 어떤 분야든 직업을 구하고,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겠지. 나는 그전에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 고민해봐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여러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사색을 할 여유가 점점 사라질 것이므로, 어릴 때 충분히 생각해두기.


외롭고, 지겹고, 지친다. 여기저기 놀러다니고, 지금의 행복만이 전부라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가끔 나만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고민하는 나는, 텔레비전 광고에 나온 것처럼 오늘을 살지(carpe diem) 못하는 바보에 불과한 걸까. 그냥 난, 남들을 따라하고 싶지 않다. 치맥이 맛있다길래 치킨을 사먹고 싶지 않고, 여의도 벚꽃이 예쁘다길래 여의도에 가고 싶지 않다. 어쩌다 한번씩 스스로가 가엾지만, 남들을 따라할 뿐인 남들처럼 살고 싶지도 않다. 누군가의 눈엔 부적응자로 보이겠지. 어감은 썩 좋지 않지만,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생에 한번쯤 부적응자로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늘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삶이 건강한 삶이라고 보지 않는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두렵지도 않다. 막연히 불안한데 그 불안을 해결할 수 없을 때 자신이 얼마나 망가지는지 잘 아는 나는 일부러 불안감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인 물일까, 생각해보다가 20년 인생에서 한번도 고여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당분간은 좀 고여보기로 한다. 충분한 고민의 결과로 내가 망가진다면 나는 처음부터 망가질 재목이었던 거고, 망가지지 않는다면 이 경험이 인생에 큰 거름이 될 거라 여긴다. 머리가 아프고, 늘 움츠린 모양새지만, 이게 스스로의 삶에 대한 나의 최선이다. 남의 말 듣지 않고, 조금이라도 어릴 때 자기 고집대로 살아보기. 죽이 되든, 내가 생각한 가장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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